• 밀알 하나
  •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복음 12:24)

    진리는 단순한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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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늙으면 다시금 어린아이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극히 단순한 것이 어린아이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요즈음  진리는 지극히 단순한 곳에 있다는 것을 점점 더 절실하게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자연 현상 속에서 하느님의 섭리를 많이 깨닫게 됩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이것은 누구나 자연 현상 속에서 실제로 보고 있는 지극히 단순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단순한 자연 현상을 가지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연의 섭리는 또한 하나님이 다스리는 섭리이기도 합니다. 신학자들은 성서말씀을 가지고 어려운 말로 주석을 달고 철학적인 용어를 써서 힘들게 만들고 있으나 예수님의 말씀은 지극히 단순하므로 거기에는 힘든 주석이 필요 없습니다. 그저 말 그대로입니다.

    일본의 어느 고분 속에서 4천년 묵은 항아리를 발견하였는데 그 속에 씨앗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씨앗은 4천년전 원형 그대로 남아 있더라는 것입니다. 썩지 않으면 4천년이 지나도 한 알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새 생명이 나올 수 없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밀알 하나’는 그대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한 생명이 썩지 않으면 거기서 새 생명이 태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부활의 새 열매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서만 구원을 얻는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이 믿음으로서만 (sola fide)라는 말은 사도 바울과 마틴 루터에 의하여 강조된 말로써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진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고생을 할 필요 없이 즐겁게 살면서 부활의 열매만 받아먹으면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열매를 맺으려면 땅에 떨어져 썩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 믿음으로서만” 구원을 얻는다고 강조한 사도 바울이나 마틴 루터가 어떻게 살았던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부르짖음

    “감옥에도 더 많이 갇혔고 매는 수없이 맞았으며 여러 번 죽을 뻔 했습니다. 노동과 고역에 시달리며 여러 번 밤을 새우고 주리고 목말랐으며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고 헐벗었습니다.”(고후 11:23, 27)

    “그의 고난에 함께 참여하여 그가 죽으신 모양대로 죽어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의 부활까지 이르려는 것입니다.”(빌 3:10)

    “우리가 언제나 예수의 죽으심을 우리 몸에 짊어지고 다니는 것은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는 것입니다.”(고후 4:10)

    “형제들이여!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습니다.”

    그의 삶은 매일같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이었습니다. 매일 매일의 삶의 현장에서 죽음과 삶이 이어지는 구체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마틴 루터의 부르짖음

    21살의 청년 마틴 루터는 이 세상을 뒤로 하고 검은 수도원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눈물을 머금고 전송하는 몇 친구를 뒤에 남긴 채 수도원의 문은 굳게 닫혔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하느님 앞에서 참되게 살기를 갈망하였던 것입니다.

    비장한 싸움은 시작되었습니다. 그의 싸움의 중심은 그가 버리고 온 화려한 세상으로부터 오는 어떤 유혹을 끊기 위한 소극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정말 하느님 앞에서 참다운 삶을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느님 앞에서 요구된 참 사랑을 실현할 수 있을까? 노력이 진지하면 할수록 그의 고민은 심각하였습니다. 고민의 칼날은 여지없이 그의 가슴을 찌르며 들어갔습니다. “만일 수도사가 수도원의 서약을 지킴으로써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면 나도 그중 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내가 그 이상 더 수도원 생활을 계속 하였더라면 나는 불면, 기도, 독서, 기타 노동의 고통으로 죽었을 것입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로마의 한 성당 안에 있는 “고행의 계단”을 본 일이 있습니다. 수도사들의 무릎은  계단을 오르내리는 고행으로 껍질이 벗겨져 피투성이가 되었던 것입니다. 고행으로 기진맥진하여 비통하게 쓰러진 “한 개의 해골”(그렇게 자기 자신을 묘사하였습니다), 그곳이 바로 하느님이 새 생명을 불어 주신 장소였던 것입니다. 그는 “믿음으로만”을 절규하며 수도원을 나섰습니다. 그때 온 세계는 진동하였습니다. 거기서 종교개혁의 새싹이 움텄던 것입니다.

    매일매일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죽는다는 사도 바울의 절규나, 수도원에서 생명을 내걸고 싸웠던 마틴 루터의 절규가 우리들에게 의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울이라는 사도와 루터라는 종교개혁자가 나와서 생명을 내걸고  대신 싸워준 덕분에 우리는 이제 그런 고생을 겪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까? 사도 바울과 마틴 루터가 발견해 준 ‘믿음으로서만 구원을 얻는다’는 결론 덕분에 우리는 편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생명의 발견에 있어서는 발견된 그것이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발견이야말로 긴요한 것”이라고 한 도스토에프스키의 말은 옳은 말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한 알의 밀알로 비유하시면서 그것이 열매를 맺으려면 썩어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밀알이 썩지 않고도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그런 기적을 예수님이 가르친 일이 없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대신 죽었으니 너희들은 그런 고생을 하지 말고 편안히 즐겁게 살면 된다는 것을 가르치지는 않았습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썩지 않고서도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기적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 기적이 은총의 덕분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썩는다 하더라도 거기에서 생명이 나오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의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이루어 놓는 기적입니다. 우리는 땅에 씨를 심어놓고 거기서 새싹이 땅을 뚫고 나오는 것을 보면 참으로 신기하고 이것이야 말로 기적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카타콤베의 흙 

    로마에서 이탈리아 남쪽으로 통하는 압피아라는 구가도(舊街道)가 있습니다. 압피아 문을 지나면 소위 카타콤베 가도(街道)가 나오는데 그 길 연변의 땅속에는 카타콤베(지하묘지, 지하동굴)가 있습니다.

    이 지역은 부드러운 화산 토질로 되어 있어 쉽게 굴을 뚫을 수 있고 그러면서도 잘 부서지지 않아 동굴을 만드는데 편리한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손으로도 파헤칠 수 있는 정도로 흙이 부드러우면서도 모래와는 달리 잘 허물어지지 않습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제국의 극심한 박해를 피하여 이 지하묘지를 거처로 하여 비밀집회도 가졌고 예배도 드렸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질병이나 인플레이션, 민족의 침입 등 온갖 재난이 생길 때마다 누명을 뒤집어쓰고 처형을 당했습니다. 네로 황제는 로마의 태반을 불태운 64년의 대화재(大火災)를 그리스도인들의 소행으로 몰아 처형하였습니다. “처형은 마치 운동경기와 같았다. 신자들에게 짐승의 가죽을 입혀 맹수에게 물려 갈기갈기 찢겨 죽게 하였다” 고 타키투스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옆으로 흙을 파서 지하동굴을 만들어 가다가 굳은 지층에 부딪혀 더 이상 옆으로 팔 수 없을 때에는 아래층으로 파고 내려가 지하동굴은 4-5층의 미로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로마 주변에는 약 50개소의 카타콤베가 있으며 그 길이는 연장 수백 킬로에 달할 것이라고 합니다.

    로마의 어떤 황제는 그들이 지하에 피해서 살고 있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기도 하였으나 어떤 황제는 숨어있는 그들을 악착같이 찾아내어서 모진 박해를 가하였습니다. 그 지하묘지에는 종교 박해 때문에 피신해 온 그리스도인 이외에 사회에서 범죄를 저지른 일반 죄인들도 이곳에 숨어 있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 중 어떤 범인들은 그리스도인이 피신해 있는 장소를 밀고 하여 자기 죄를 면죄받기 위하여 간첩 노릇을 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이런 밀고자의 행동을 눈치 채고 미리 들어오는 통로를 흙으로 막음으로써 그들이 잡으러 오는 것을 차단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이 지하묘지에서 피신생활을 하다가 죽으면 그 지하묘지에 묻혀 갔습니다. 미로의 군데군데 파인 장소가 있는데 그곳은 그들의 뼈가 묻힌 장소입니다.

    나는 그 흙을 손으로 만지며 참으로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입구에서 받은 작은 입장권을 접어서 그 속에 미량의 흙을 담아 넣었습니다. 나는 그들의 살아있는 신앙의 증거를 이 미량의 흙속에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성 베드로 대성당, 그것은 웅장하고 훌륭한 “기독교적”인 문화의 유산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와는 직접 관계가 없는 화려한 예술의 전당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이 카타콤베의 흙에는 비천한 그리스도인들의 뼈가 묻혀있습니다. 그들로 인하여 그리스도교는 모진 핍박 중에서도 견디어 지금 우리들에게까지 살아서 전달된 것입니다. 카타콤베의 흙 속에 떨어져 썩은 밀알이 오늘날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머리말
그저 주어진 대로 산다
밀알 하나
들의 백합화를 보라
너의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
십자가의 길
병의 선용
죽음과 삶
향린의 태동과 초창기의 모습
초점을 가진 교회
내가 목마르다
그리스도와 함께 걸으며, 함께 싸우며 그리고 그리스도와 고난을 함께하는 교회
전쟁과의 전쟁
치료와 치유
지구의 암:인간
우리 몸의 지혜
마음의 고향
사랑의 날개
꿈에서나 그려보던 금강산
60년 만에 밟아보는 평양땅
6․25의 회상
미국의 패권주의와 아시아의 평화
시급히 북녘 어린이를 도웁시다
이라크 어린생명들의 비명
“일등만이 살아남는다”는 세계
야만의 시대
안병무(安炳茂) 형을 먼저 보내면서
야성(野聲)과 안병무(安炳茂)
행동하는 양심 -인간 홍근수
서울의대 가정의학과 창립 20주년을 축하하면서
인의협의 반 세대를 회고하며
의대생의 방학동안의 농촌 활동
서울의대 소아과 전공의와의 대화
대한소아과학회의 초창기
낙엽과 더불어
장애(障碍)의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생명의 기쁨
'평양 어깨동무 어린이병원' 준공에 즈음하여
60년에 되돌아보는 향린의 창립정신
교회라는 공동체
예수님이 계시는 곳
재일동포 인권을 위해 애썼던 이이누마 지로(飯沼 二郞) 교수의 서거를 애도하며
입춘대길(立春大吉)
본회퍼 - 우리 가슴속에 살아있는 신앙의 선배
박연폭포(朴淵瀑布)
김정애 권사를 생각하며
제주도 피난살이
늙어서 후회되는 일들
예수님과 신앙 선배의 임종
마음의 고향
너의 하느님은 어디 있느냐?
마음의 고향
교회라는 공동체
함께 걸어온 사람들
병과 치유
남은 이야기들
의사의 길을 걸으며
생명을 살리는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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