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과 삶
  •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오면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절을 맞이하게 된다. 부활절은 기독교의 행사 중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축제일뿐 만 아니라 또한 가장 의미가 깊은 명절이다. 부활절을 언제 지킬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초대교회 시절로부터 오랫동안 계속되었으나 점점 그레고리우스력으로 통일되어 오늘날 인정되고 있는 니캐아총회 이후의 부활절 제정법은 춘분(春分)이 지나 최초의 만월(滿月)후에 오는 첫째 주일로 되어 있다. 따라서 그 해에 따 라서 날자가 다르지만 3월 22일부터 4월 25일 사이에 지키게 된다. 영어의 Easter, 독일어의 Ostern은 튜튼족의 봄의 여신인 Eostre 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부활절에 계란을 주는 습관이 있는데 이것은 계란이 부활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습관은 근세의 소산인 것 같다.

    사람들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올 것을 기대하는 것 같이 그리스도인은 봄이 오면 으레 부활절이 올 것을 기대하고 있다. 겨울의 매서운 찬바람 대신에 따스한 봄의 햇살이 빛이고 어름으로 덮였던 땅을 뚫고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나오는 봄과 함께 부활절은 해마다 우리를 찾아온다. 길가에는 벌써 개나리가 노란 꽃망울을 보이고 담 너머로는 목련화가 소담스러운 자세를 들어내고 있으니 머지않아 부활절이 올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봄이 우리에게 부활절을 갖다 주는 것은 아니다.

    나는 77세라는 일생을 살아오는 동안에 몇 번 죽음을 각오해야 했든 일이 있었다. 물론 6.25 때는 여러 차례 죽음을 당할 번하였으나 그때는 많은 사람들이 당했던 일이다. 그 외에도 두 번 죽음을 각오했던 일이 있었다. 한 번은 1978년 9월경이었고 또 한 번은 최근 두 달 동안의 일이다.

    1978년에는 원인 모를 열이 나면서 혈색소가 11 g로 떨어지고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서 여러 가지 혈액검사를 해본 결과 골수에 생긴 암으로 생각되어 암 전문교수와 상의하여 입원을 준비하고 있었다. 성북동 길로 산책을 나갔으나 천천히 걸어도 숨이 차서 걸지를 못하고 돌아오곤 했다. 그래서 집에 누어있기 시작했다. 병 문안을 왔던 한 의사는 자기는 유언장을 써서 언제나 보관하고 있다는 말을 나에게 했다. 참 참고가 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후로 어찌된 일인지 열이 점차로 내리기 시작하고 빈혈도 차차 좋아져서 회복의 길로 들어서 입원을 보류하게 되었다. 지금도 그 병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다.

    또 한번은 최근 두 달 동안에 일어난 일이다. 배뇨곤란이 있어서 나이가 나이니 만큼 암에 대한 검사도 함께 해보게 되었다. 뜻밖에도 암에 대한 검사수치가 아주 높게 나타났다. 그런 종류의 암 환자가 나타낼 수 있는 숫자 중에서도 높은 숫자였다. 그래서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초음파 검사를 한 후에 그 검사를 한 의사도 강하게 암을 시사하였다. 그래서 내 자신은 틀림없는 암으로 각오하였다. 다음은 조직검사를 하는 것이다. 조직검사 결과가 나을 때까지 나는 가족의 아무에게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조직검사를 한다는 것조차 몰랐다.

    나는 그 동안 혼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한평생 사는 동안에 한 일이 무엇일까? 하고. 정말로 한 일이 아무 것도 없구나. 나는 지난 가을에 백내장 수술을 하려다가 책을 쓰노라고 지금까지 미루어 왔다. 이를 해 넣는 것도 연기하였다. 그리고 보니 잘 되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암이라면 그런 것을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 이제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조직검사를 받은 후에 무리인 줄 알면서도 간암 말기로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옛 교우를 찾아가 그를 위로하였다. 그는 참으로 반가와 했다. 그 자신도 의사이기 때문에 자기의 병을 다 알고 있었다. 무척 수척해있었고 밤이면 너무 아파서 진통제를 맞는다고 하였다. 그는 지금까지 건강하여 병원에 간 일도 없었고 물론 병원에 입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나의 조직검사 결과는 암이 아니고 염증소견으로 나왔다 혈액검사 결과로 보아 내 자신은 틀림없는 암이라고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너무나 이외의 일이었다. 정말일까? 그러나 그것을 판독한 병리과 의사가 그 소식을 알려주기 위하여 일부로 집으로 전화까지 걸었으니 정말이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앞으로 더 경과는 보아야 하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옛날에 “지구의 종말”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한 천문학자가 지구와 별들의 운행을 연구하는 가운데 어떤 큰 유성이 지금 지구를 향해 접근하고 있는데 이 유성이 지구와 충돌하게 될 것으로 예측되며 그렇게 되면 지구상의 온 인류는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신문지상에 대문짝 같이 큰 글자로 보도되자 온 세상은 들끊기 시작하였다. 상점들은 문을 닫고 교회나 성당에는 많은 교인들이 모여들어 참회의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눠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천문학자의 처음 예측과는 달리 그 유성이 지구와 정면 충돌하지는 않고 가까이로 지나가게 되어 지구의 전멸은 면하게 되었다는 보도가 신문지상에 발표되었다 그리자 온 세상은 다시금 원상으로 돌아가 술집은 손님으로 가득 찼고 교회는 다시금 한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함석헌 선생의 스승이라고도 할 수 있는 유형모 선생은 자기의 죽을 날을 정하고 자기가 앞으로 이 세상에 살아있을 날 수를 헤어가며 살았다고 한다.

    사순절을 맞이하며 나는 죽음과 삶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부활에 관한 전승으로 가장 오랜 것은 고린도전서 13장에 나타나 있다. 초대 교회는 예수의 부활 증언으로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였으며 선교의 핵심 내용이었다. 바울로는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시지 않았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헛된 것이 되고 여러분은 아직도 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5 : 17)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예수의 부활은 바울로의 신앙의 근거를 이루고 있으며 또한 기독교 신앙의 기초가 되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울로의 그러한 부활 신앙에 대한 이론적인 토론이 아니라 그러한 부활 신앙을 가지고 있던 바울로의 삶은 과연 어떠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리스도와 고난을 같이 나누고 그리스도와 같이 죽는 것입니다”(필리비 3 :10)

    “심은 씨는 죽지 않고서는 살아날 수 없습니다”(고린도전 15'36)

    “이렇게 우리는 언제나 예수의 죽음을 몸으로 경험하고 있지만 결국 드러나는 것은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 안에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고린도후 4 : 10)

    “형제들이여!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나니 나는 날마다 죽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엿볼 수 있는 것은 죽음과 삶은 예수 안에서 하나의 사건으로 이루어 졌다는 것이다. 즉 십자가사건과 부활사건은 분리할 수 없는 한 사건의 양면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와 함께 죽을 때 예수와 함께 살아난다는 것이다. 죽음 없이는 새 생명이 태어날 수 없다.

    이러한 십자가사건과 부활사건은 예수에게서 한번 일어나서 그것으로 끝나 버린 과거사가 아니라 바울로의 삶 속에서 매일같이 계속해서 일어난 것이다. 이러한 죽음과 부활은 바울로에게서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 공동체 속에서 계속해서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예수의 고난을 우리 몸에 지님으로서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때 그 생명은 우리의 생명이 아니라 예수의 생명이다.

    참 생명을 죽음이 가두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부활사건이다. 예수 부활은 “죽음”에 대한 사형선고(death of death)를 의미한다. “죽음아, 네 승리는 어디 갔느냐? 죽음아, 네 독침은 어디 있느냐?” (고린도전 15: 55). 독침을 잃은 죽음은 이미 아무 실세가 없는 허상이다. 어둠 속에 한 줄기의 빛이 빛일 때 어둠은 살아질 수밖에 없는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는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났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은 어디까지나 그의 수난에 참여하는 자에게 현실로 되는 것이지 구경꾼들에게까지 인식될 수 있는 사건은 아니다. 그것은 죽음 없이 새로운 삶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부활절은 봄과 함께 어김없이 찾아온다. 그러나 부활절은 봄과 같이 자연적으로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부활절은 이 땅을 풍미하고 지배하고 있는 악의 세력, 물리적 힘이 약자를 억누르고 죽음을 최후의 무기로 삼아 공갈하고 있는 현장 속에서 가난한 자, 억눌린 자들의 신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이들을 향하여 “우리 주님께서는 이 악의 세력을 물리치기 위하여 싸우다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했으나 다시 사셨다”는 사실을 온 땅에 외치는 날이다. 부활절은 죽음이 이 땅에서 더 이상 최후의 무기가 될 수 없음을 선포하는 날이다. 악의 세력이 더 이상 이 땅에서 진리를 무덤 속에 가두어 놓고 의기양양해 할 수 없다는 것을 널리 알리는 날이다.

    (2000.4.1)

머리말
그저 주어진 대로 산다
밀알 하나
들의 백합화를 보라
너의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
십자가의 길
병의 선용
죽음과 삶
향린의 태동과 초창기의 모습
초점을 가진 교회
내가 목마르다
그리스도와 함께 걸으며, 함께 싸우며 그리고 그리스도와 고난을 함께하는 교회
전쟁과의 전쟁
치료와 치유
지구의 암:인간
우리 몸의 지혜
마음의 고향
사랑의 날개
꿈에서나 그려보던 금강산
60년 만에 밟아보는 평양땅
6․25의 회상
미국의 패권주의와 아시아의 평화
시급히 북녘 어린이를 도웁시다
이라크 어린생명들의 비명
“일등만이 살아남는다”는 세계
야만의 시대
안병무(安炳茂) 형을 먼저 보내면서
야성(野聲)과 안병무(安炳茂)
행동하는 양심 -인간 홍근수
서울의대 가정의학과 창립 20주년을 축하하면서
인의협의 반 세대를 회고하며
의대생의 방학동안의 농촌 활동
서울의대 소아과 전공의와의 대화
대한소아과학회의 초창기
낙엽과 더불어
장애(障碍)의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생명의 기쁨
'평양 어깨동무 어린이병원' 준공에 즈음하여
60년에 되돌아보는 향린의 창립정신
교회라는 공동체
예수님이 계시는 곳
재일동포 인권을 위해 애썼던 이이누마 지로(飯沼 二郞) 교수의 서거를 애도하며
입춘대길(立春大吉)
본회퍼 - 우리 가슴속에 살아있는 신앙의 선배
박연폭포(朴淵瀑布)
김정애 권사를 생각하며
제주도 피난살이
늙어서 후회되는 일들
예수님과 신앙 선배의 임종
마음의 고향
너의 하느님은 어디 있느냐?
마음의 고향
교회라는 공동체
함께 걸어온 사람들
병과 치유
남은 이야기들
의사의 길을 걸으며
생명을 살리는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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