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향린의 태동과 초창기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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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리스도를 향한 젊은 열정(熱情)

    서울대학교 각 단과대학의 기독학생 중 열성적인 학생들의 모임이 있었다. 그 모임은 일신회라고 불렸다. 일신회의 “일신”은 一神, 一信, 一身을 의미한다. 의학이 2명, 철학이 2명, 종교철학, 사회학, 경제학, 법학, 공학, 음학이 각각 1명씩 있어서 11명이었다. 이들의 모이면 밤을 새우며 기도하며 토론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푸닥거리하는 패들이라는 말도 들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전원이 모였다. 시간도 엄수하였다(“이미 시간은 지났다. 밖에서 슬피울며 이를 갈지어다”라고 문에 써부치기도 했다). 복사 기도 없는 시대 원서를 윤독하기 위해 먹지로 일일이 벗겨서 돌렸다. 이렇게 여러 분야의 동지가 서로 힘을 합하면 입체적 선교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중에서 소수의 무리가 자하문밖 승가사 옆에 있는 수도원에서 기도회를 가지고 있는 중 6.25동란이 일어났다.

    2. 6.25동란과 민족의 비운(悲運)

    6.25의 발발로 각지로 흩어져 피난 생활을 하게 되었다(부산, 대구, 제주도, 전주 등). 그러나 이 흩어진 친구들 사이를 서로 연락하고 연결하는 역할을 안병무 선생이 하였다. “모이자! 그래서 정신을 가다듬고 이 시대에 주시는 음성을 듣자! 그리고 일하자. 내일 죽더라도 무엇을 할려다가 왔다는 보고의 자료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전주에서 1주간을 함께 모여 앞으로의 진로에 대하여 진지하게 기도하고 토론하였다.

    3. 기성교회에 대한 회의(懷疑)

    6.25라는 민족 상잔의 전쟁중에도 기성교회는 민족에게 희망과 진로를 제시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교파싸움만 일삼고 있었다. “인제는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대중은 않따른다. 너무 속은 민족이라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고지듣지 않는다. …… 이제는 코웃음의 대상이고 남은 설교가 있다면 그것은 실제 삶면서 나늘 본받아라 하는 것 뿐이다.” “오늘의 교인들은 교회를 냉소하고 있다. 우리는 이들과 함께 살면서 평신도로서 그들이 참 교인이 되게 하여야 한다. 그들과 함께 오늘의 문제를 복음의 빛에 비추어 진지하게 풀어나가는 코이노니아를 갖자. 그리고 신앙지를 내는 일을 하자(신앙지는 야성을 의미함).”

    4. 동지적 결단(決斷)

    신앙의 동지들이 한 마음을 모아 우리의 전 생활을 바쳐 주님의 몸된 교회를 이룩하여 보자. 이 땅에서 주를 따른 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사는 것인지를 볼 수 있는 구체적으로 살아 있는 모습(진정한 교회)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하여는 다음과 같은 비상한 생활 태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① 생활공동체(함께 땀흘리며 살면서 예배하는 교회)
    ② 반 수도원 적인 교회(신앙의 훈련)
    ③ 목회자 중심이 아니고 평신도 하나하나가 목회자적인 사명을 가지고 사는 교회 (평신도 교회)
    ④ 각자의 직업을 통하여 입체적으로 사회를 향하여 접근해 나가는 교회(입체적 교회 )
    ⑤ 교파간의 싸움에 관여하지 않는 교회(독립 교회)

    1) 생활공동체

    1953년 2월부터 서울로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그 때는 멀리 북쪽에서는 아직 포성이 들리고 있었다. 옛날 고아원이었던 향린원 자리(지금의 동보성 자리, 1000여평, 그 당시 적산가옥)에 들어가 살기로 했다. 안 선생이 제일 먼저 들어왔다. 다 파괴되어 집웅과 기둥만 남아있는 집에 칸을 막고 신문지로 도배를 하고 한 가정씩 들어왔다.

    1953년 5월 17일 : 첫 예배
    남자 : 6명, 여자 : 6명
    설교 : 안병무 선생

    매일 아침 도서실에 모여 기도회를 갖고 성서 1장씩 읽었다. 매주 주번이 있어서 주번은 그 주의 실천사항을 정하여 실천하기로 했다. 대지 구입을 위한 공동 노력으로 청계천 옆에 있는 중앙신학교에 천막을 치고 ‘제일고등학원’울 시작하였다. 이종완 선생이 책임자가 되고 모두가 강사로 출강하여 들어오는 수입을 모아서 부지를 구하는데 충당하였다. 향린원 중앙에 있는 건물을 수리하여 기도실로 쓰고 각자가 가지고 있던 책을 그곳으로 모아서 도서실로도 쓰게 되었다.

    2) 반 수도사적인 자세(신앙의 훈련)

    이러한 공동체 생활을 할려면은 일반적인 개인 중심적인 생활양식을 지양하고 반수도사적인 자세로 공동규약에 의한 공동생활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신앙의 훈련을 중요시 하였다. 6?25 직전에 신앙동지들이 장래 할 일을 결심하기 위하여 찾아 갔던 곳도 자아문 승가사 근처에 있는 수도원이었고 동백리에 있는 야산에 땅을 구하였던 것도 원래는 그 곳에 교회의 수양관을 짓는 것과 교회의 묘지를 만드는 것을 생각하였었다.

    3) 평신도 교회

    향린교회는 평신도 신앙운동으로 시작되었다. 세계적으로 평신도 운동을 부르짓게 된 것이 60년대이므로 이보다 10년이나 앞선 것이다. 목회자가 중심이 되어 이끌어가는 교회가 아니라 평신도가 각자 목회자적 사명을 가지고 봉사하는 교회로서 출발을 하였다. 그리하여 전담 교역자를 모시지 않고 설교도 돌아가면서 했다.

    4) 입체적 교회

    말로 설교만 하는 교회가 아니라 교인 각자가 자기의 직업을 통하여 밖을 통하여 입체적으로 접근해 나가는 선교를 하는 것이다. 신학을 전공한 사람은 신학을 통하여, 교육학을 전공한 사람은 교육을 통하여, 음악을 전공한 사람은 음악을 통하여 의학이나 약학을 전공한 사람은 의료를 통하여 선교를 펼쳐나가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향린교회가 남한산 거암교회를 개척하여 그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할 때에 목회자만 파송한 것이 아니라 의료인들은 매주일 예배 후 거암교회가 있는 현장으로 가서 의료활동을 함으로써 선교를 하였다.

    5) 독립교회

    민족은 위기에 처하여 있는데 기성 교계는 교파싸움만 하고 있었다. 일반신도들은 교파싸움에 진절머리가 났다. 다음 글은 그 시대의 평신도의 느낌을 잘 나타내고 있다.

    “싸움 없는 교회, 아무 파에도 가담하지 않는 교회, 딸라의 배경도 없고 선교사의 코낌도 없는 교회, …… 순수한 평신도의 교회, 이것이야 말로 한국적 교회가 아니겠는가! 서로 성경을 토론하고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적합한 것인가? 이 민족사회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눈물로 같이 기도하며 협력하며 봉사하는 정다운 교회!”
    (이종범, '나는 왜 향린교회원이 되었는가?' <향린 20년> 1974, p.75)

    회고와 반성과 전망

    1953년 향린교회가 창립된지 44년이 지나면서 향린의 초창기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다. 그리스도를 향한 젊은 열정에서 나온 순수한 꿈이 그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그것은 그 꿈이 허망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동지들 사이의 더 깊은 곳에서 견해의 차이가 있었고 인간성이 갖고 있는 한계 때문으로 생각된다. 물론 거기에는 처음 예기치 못했던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고 기독교의 오랜 역사를 통하여 필요해서 생긴 제도를 경시했던 점도 있었다. 그러나 그 꿈이 내포하고 있는 정신과 신앙적 양심은 시대의 변천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에 맞게 실천되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우정(友情)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로서 귀중한 것이다. 그러나 우정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고 우정도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나간다는 전제에서 귀중한 것이며 우정도 진리 앞에 복종하여야 한다. 평신도 신앙운동을 시작한 동지들끼리의 결합은 긴밀하였고 한 울타리 안에서 공동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신앙동지들과 일반 교인들과의 사귐은 동지들 사이의 사귐 같이 밀접하지 못하였다. 동지적인 그룹이 이끄는 집단체제가 되었고 교인 하나하나가 꼭 같이 참여하는 평신도 교회가 되지 못하였었다.

    전담 목회자가 없었기 때문에 일반 교인들을 그들의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문제들까지 돌보아 주는 세심한 관심이 부족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향린교회를 찾아온 교인들이 초신자보다는 이미 기성교회에서 교회생활을 하면서 회의를 느껴서 찾아온 의식적이고 성숙한 교인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앞으로도 이어져 나가야 할 초창기의 정신

    • 주일날 1-2시간 예배만 보고 끝나는 교인이 아니라 각자가 목회자 같은 심정으로 자기의 일상생활이 교회와 어떤 면에서라도 관련이 있어야 한다(구체적인 신앙생활, 평신도 교회의 정신)
    • 교인들 중에서 직업이 비슷한 교인들은 협력하여 그 직업을 통한 선교활동을 펼쳐나간다(입체적 교회)
    • 계속적인 신앙의 훈련이 필요하다. 이기적인 것(egoism)과 함게 싸워나가는 실천 생활이 필요하다.
    • 우리교회는 비록 작으나 초점을 가진 교회라야 한다. 백화점 같이 화장품, 오락기구, 수입된 사치가구 등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그런 백화점 같은 교회가 아니라 이 시대, 이 땅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에 초점을 둔 교회로서 남아 있어야 한다.
    • 우리 교회는 옛날부터 젊은이가 많은 교회로서 항상 갱신하며 새로운 비젼을 제시하는 젊은 교회가 되어야 한다.
    • 6.25의 폐허 속에서 태어난 향린교회는 항상 민족과 고난을 같이하며, 이 사회에 정의를 구연하며, 평화통일을 이룩하기 위하여 선봉적인 역할을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머리말
그저 주어진 대로 산다
밀알 하나
들의 백합화를 보라
너의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
십자가의 길
병의 선용
죽음과 삶
향린의 태동과 초창기의 모습
초점을 가진 교회
내가 목마르다
그리스도와 함께 걸으며, 함께 싸우며 그리고 그리스도와 고난을 함께하는 교회
전쟁과의 전쟁
치료와 치유
지구의 암:인간
우리 몸의 지혜
마음의 고향
사랑의 날개
꿈에서나 그려보던 금강산
60년 만에 밟아보는 평양땅
6․25의 회상
미국의 패권주의와 아시아의 평화
시급히 북녘 어린이를 도웁시다
이라크 어린생명들의 비명
“일등만이 살아남는다”는 세계
야만의 시대
안병무(安炳茂) 형을 먼저 보내면서
야성(野聲)과 안병무(安炳茂)
행동하는 양심 -인간 홍근수
서울의대 가정의학과 창립 20주년을 축하하면서
인의협의 반 세대를 회고하며
의대생의 방학동안의 농촌 활동
서울의대 소아과 전공의와의 대화
대한소아과학회의 초창기
낙엽과 더불어
장애(障碍)의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생명의 기쁨
'평양 어깨동무 어린이병원' 준공에 즈음하여
60년에 되돌아보는 향린의 창립정신
교회라는 공동체
예수님이 계시는 곳
재일동포 인권을 위해 애썼던 이이누마 지로(飯沼 二郞) 교수의 서거를 애도하며
입춘대길(立春大吉)
본회퍼 - 우리 가슴속에 살아있는 신앙의 선배
박연폭포(朴淵瀑布)
김정애 권사를 생각하며
제주도 피난살이
늙어서 후회되는 일들
예수님과 신앙 선배의 임종
마음의 고향
너의 하느님은 어디 있느냐?
마음의 고향
교회라는 공동체
함께 걸어온 사람들
병과 치유
남은 이야기들
의사의 길을 걸으며
생명을 살리는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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