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과의 전쟁
  • 내가 그 동안 겪어온 전쟁만 해도 만주사변, 태평양전쟁, 6.25사변, 월남전쟁, 걸프전쟁, 실로 참혹한 전쟁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만나보면 아무런 원한도 없는 서로 끼리 무엇 때문에 서로 죽여야만 하는 것입니까? 우매한 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이 전쟁, 이 정당화된 야만적인 집단 살인 행위를 가지고는 평화는 영원히 이 땅위에 도래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한 일입니다. 평화를 위한 전쟁, 정의를 위한 전쟁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전쟁과의 싸움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사야서 2:4에 있는 말씀대로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척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처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 연습을 아니 하여야 할 것입니다.'

    평화는 저절로 굴러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평화를 만들려고 애쓰는 인간들의 노력 위에 하나님의 역사가 함께 하실 때 이로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 강대국들이 군비축소를 해나가려고 하고 있는 이 마당에 동양의 여러 나라들은 서로 다투어서 군비강화를 기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시아가 무기 수출업자들 이 무기 매상고를 올리기 위해 가장 눈독을 드리고 있는 지역이라고 합니다. 한국의 남북분단은 무기를 계속 수입해야 된다는 구실을 만들고 있습니다.

    1995년 4월 13일의 워싱톤 포스트지의 보도에 의하면 미국의 행정부는 핵문제때문에 북한과의 긴장이 고조된 작년 5월경 북한 영변에 있는 핵시설을 폭파하는 동시에 수십만의 미군을 동원하여 북한과 전면전쟁을 버리는 것을 여러 차례 검토하였다고 합니다. 당시 페리 미국 국방무장관은 미군을 한국으로 운반하는 구체적인 수송 일정까지 검토하고 실제 모의 전쟁의 실험까지 실시하였다고 합니다. 핵무기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서 라고 하면서 핵병기의 사용까지 검토했다는 것입니다.

    한반도에 재래식 전쟁이 일어났을 경우 미군 8~10만명을 포함하여 백만명 이상의 회생자가 날것으로 판단하였다고 합니다. 전쟁 비용도 1조불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였습니다. 한국민에게 백 만명 이상의 희생자를 내며 천문학적인 재산 피해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는 이런 엄청난 전면전쟁을 어떻게 미국 정부는 당사국과는 상의도 없이 제멋대로 발상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팍스아프리카나에 의한 평화를 꿈꾸고 있는 오만한 정치가들의 망상이 아니겠습니까? 강대국들은 무력에 의한 세계정복을 감행하고 다음에는 냉전체제하에 제 3국을 손안에 넣고 지금에 와서는 자유경쟁이라는 명분하에 경제적으로 점령해 들어가는 단계에 왔습니다. 현재 경제적으로 절대적 유리한 입장에 있는 강대국들은 “자유 경쟁”이라는 이름하에 강자의 세계 정복에 나섰습니다. 전선(戰線)이 없는 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사회의 불균형, 가치관의 혼란

    지금 세계에서는 여러 곳에서 테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세계는 지금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돌발사건에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빈부의 격차, 무주택의 난민, 소수 민족에 대한 차별, 마약, 에이즈, 소아에 대한 학대, 이러한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가 산적해 있음을 보아야 하겠습니다.

    나는 소아과 의사이기 때문에 소아학대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미국에서는 부모가 자기 자식을 때려서 죽는 아이가 1년에 적어도 2천명 이상, 그리고 죽기까지는 않지만 중상을 입는 아이가 14만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오쿠라호마 테러사건으로 몇 명이나 사망했는지 몰라도 부모들의 학대로 한 달동안에 죽는 아이가 그 만큼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빈부의 격차, 소외와 불균형, 사회적 갈등, 가치관의 혼란은 세계 도처에서 분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것을 경찰력의 증강이나 정보망의 확대 같은 것으로 막을 수 있겠습니까. 지각(地殼)의 불균형이 지진을 일으키는 것 같이 사회적 불균형과 가치관의 혼란이 이러한 공포와 무질서를 초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족간의 깊은 골

    민족간의 부(富)의 불균형, 민족 에고이즘, 집단 에고이즘, 종교 에고이즘, 무제한의 경제경쟁, 이런 것들이 민족 간의 유형무형의 전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유대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 하나이기 때문입니다.”라는 갈아디아서 3:26~28절의 말씀을 가지고 와다 선생은 다음과 같은 설교를 하셨습니다.

    “일본과 한국 사이에 놓여져 있는 골이 얼마나 깊은가 하는 것을 새삼스럽게 통감하였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이 아무리 깊은 골이라 할지라도 또한 아무리 처부수기 힘든 장벽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은 이것을 완전히 메워버리고 산산이 부셔버려 유대인도 없고 그리스인도 없고 일본인도 없고 한국인도 없고 그리스도 안에서는 진실로 하나로 만드신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인 하나님과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한없는 사랑과 은혜를 찬양하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밖에는 이 골을 메울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을 확실히 말씀하였습니다. 남북한 사이에 가로 놓여 있는 골, 이것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깊은 골입니다. 아이로니칼하게도 한국의 많은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이 골을 점점 더 깊이 파내려가는 데 일역을 맡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1930년 후지이(藤井武)선생은 자기나라 일본을 향하여 “망할지어다”하며 사랑의 폭언을 외친 것과 같이 나도 내 자신의 나라를 향하여 “어리석도다! 이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여”하고 외치고 싶습니다. 분단 50년을 맞이하여 한국 교회들은 금년을 통일?‘회년’의 해(레위기 25:8~12) 정하고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일본 교회의 여러 분들도 바라옵기는 한국의 평화 통일을 위하여 기도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영국과 독일이 전쟁을 하고 있을 때 영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그들의 원수인 독일 사람을 용서하였는가 하는데 대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 2차 대전이 격렬의 극한에 달했던 1940년 11월 14일 독일의 전투기가 영국의 산업중심지인 카벤트리시를 밤새도록 폭격하였습니다. 그 지역에는 14세기경에 지은 성당이 도심지에 있었습니다. 지붕은 물론 불에 타버렸고 돌담, 탑, 돌 마루만 남기고는 다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성당이 불에 타고 있을 때 교인들은 세가지 물건만 구출해 냈습니다. 그것은 큰 기둥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타다 남은 두 기둥으로 십자가를 만 들고 그 위에 "아버지여 용서하옵소서" 라는 말을 새겼습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실 때 최후로 외친 기도의 말씀입니다. 둘째로 구해낸 것은 500년 동안이나 이 나무 기등을 지탱하고 있던 굵은 쇠못이었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의 고정시켰던 위치에 못을 쳐서 '못의 십자가'를 만들고 그것을 성당에 걸어 놓았습니다. "아버지여! 용서하옵소서"하는 말이 이 카벤트리 성당의 새로운 목회 슬로건이 되어 그 후로 세계 각국의 청년들이 이 성당에 모여 "화해"와 "용서"를 실천해 나가는데 공헌하는 성당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화해와 용서만이 일본과 한국, 북한과 남한 그리고 이 땅위에 있는 모든 민족과 민족 사이에 놓여 있는 골을 메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다시라가와교회(北白川敎會)와 향린교회(香隣敎會)

    이 번에 '기다시라가와교회 50년사'를 읽으면서 향린교회와 비숫한 점이 대단히 많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기다시라가와교회의 성립의 기점은 1935년 4월 21일로 되어 있으나 실은 그 보다 5년전인 1930년부터 이미 작은 예배 공동체가 있었고 그것은 어느 교파에 속하지도 않고 일요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독립 교회로 갈 것인가 또는 어느 교파에 속할 것인가를 기도하고 생각하고 의론하다가 5년 후에 일본기독교(日基) 소속의 교회로서 출발하였다고 합니다. 향린교회도 이와 똑 같이 6년간 독립 교회로 있다가 여러가지로 신중히 의론한 결과 기독교장로회(基長)이라는 교파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경도대학 공조회의 성서연구회가 기다시라가와교회의 전신이었던 것같이 서울대학 기독학생회에서 생긴 일신회(一信會)라는 모임이 향린교회의 전신이었습니다. 기다시라가와교회가 하나의 동지적, 가정적 교회, 복음주의적 교회, 전투의 교회로서 출발했던 것같이 향린교회도 6명의 동지, 가족까지 합쳐서 12명이 함께 모여서 한 울타리 안에 살면서 초대 교회의 교회 생활을 연상하면서 그 당시의 뜻뜻미지근한 교회 생활 태도에 도전하는 젊은 교회로서 출발하였던 것입니다.

    기다시라가와교회가 만인 사제주의의 교회로서 목사에게만 선교를 맡기지 말고 모든 교인이 각자가 자기의 입장에서 정진하며 그리스도를 증언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것과 같이 향린교회도 전담 목사를 두지 않고 동지들이 각자 자기의 직업을 통해서 사제적 역할을 하면서 사회를 향하여 선교해나가는 평선도 교회, 유기적 교회, 입체적 교회를 지향하며 시작하였습니다.

    기다시라가와교회에서 처음 오꾸다 목사님이 한 달에 두 번 설교를 하고 나머지는 다른 사람이 교대해가면서 설교를 했던 것 같이 향린교회도 처음에는 4사람의 동지가 교대해가며 설교를 담당했었습니다. 오랜 전쟁 중 군국주의가 국가 권력을 휘두르고 있을 때나 또는 패전 후 정신적 황폐로 혼미상태에 빠졌던 시대나 기다시라가와교회는 비록 작은 교회일지라도 다른 데서는 들을 수 없었던 힘찬 메세지를 전하였던 같이 향린교회도 6?25 전쟁의 폐허 속에서나 또는 독재 군사 정권의 압박 속에서도 하나님의 정의의 메세지를 전하면서 부정한 세력과 싸워왔습니다. 지금도 역시 민중들과 고통을 함께 하는 교회, 민족 통일을 이룩하기 위하여 앞장 서는 교회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하여 교인들이 마음을 합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5월 17일에는 향린교회가 창립 43주년을 맞이하는 날입니다. 향린교회의 홍근수(洪根洙) 목사님은 오가사와라(小笠原) 목사님이 말씀하신 것 같이 경도의 기다시라가와교회와 서울의 향린교회가 자매 결연을 맺어 서로 교류한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일-한 교회의 침목을 도모하는 점에서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고 제가 이 곳에 오기 전에 말씀한 일이 있습니다. 자매 결연까지 안더라도 1년에 한 번쯤 목사님이나 교인의 교환 방문을 하는 것만으로도 같은 선교 목표를 향해서 서로 격려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 홍 목사님은 남미에 초청을 받아 선교집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홍목사는 남북통일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과정에서 제 5공화국 때 독재 정권의 미움을 사서 국가 보안법에 걸려 1년 반동안 옥고를 치루었습니다. 향린교회는 일요 예배에 약 3백명의 교인이 모이는 작은 교회입니다. 그러나 창립 40주년을 맞아서 창립기념으로 서울시내에 또 하나의 지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그 교회도 같은 향린교회라는 이름으로 벌써 100여명의 교인들이 모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싸워나가는 교회

    나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기다시라가와교회 창립 60주년 기념 집회에 참석하면서 주안에서의 우정에 대하여 새삼 감격해 맞이 않습니다. 그러나 우정 그 자체가 우리들의 궁극의 목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우정의 궁극의 목적은 오꾸다 선생님이 ‘싸워나가는 교회’에서 말씀하셨든 것 같이 “그리스도와 함께 거르며, 함께 싸우며, 그리고 고난을 함께 하는 것”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어디로 갈 것입니까?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예수님이 걸어가신 발자취를 따라 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무엇과 싸울 것입니까? 그것은 불쌍한 민중을 괴롭히고 있는 악의 세력과 싸우는 것입니다. 전쟁과 싸우는 것입니다. 부정한 권력과 싸와야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어떤 고난을 받을 것입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게시면서 함께 고통을 나누었던 그 사람들과 함께 고난을 나누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 주위에는 이 지구상 도처에서 가련한 힘없는 민중들이 처참하고 비인간적인 생활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이 지구상에 이 같이 학대를 받고 있는 생명들의 비명이 들리고 있는 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함께 싸우며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강도 만나 반죽음을 당한 인간을 보고 못 본체하고 지나갈 수는 없습니다. 그 비명을 다름아닌 우리 주님의 비명이기 때문입니다.

    기다시라가와교회의 두 기도의 산

    오가사와라선생은‘기다시라가와 50년사’의 서문에서 “기다시라가와교회는 기도의 산을 두 곳에 가지고 있다. 하나는 요시다야마(吉田山)이고 또 하나는 우류야마(瓜生山)이다. 경도대학을 내려다보고 있는 요시다야마는 공조회와 기도시라가와의 창립과 관련해서 기도가 올려진 산이라고 할 수 있고 멀리 내다보이는 우류야마는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 학대받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가는 종들의 헌신의 기도가 올려진 산이라고 할 수 있다.

    요시다야마와 우류야마는 한 신앙의 두가지 표현이라고 생각됩니다. 지하에 있는 같은 용암이 분출해서 생긴 두 개의 산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요시다야마는 결국 우류야마와 연결되어야 할 줄 생각합니다. 전쟁 중에 있어서의 사와자끼(澤崎)선생과 와다(奧田)선생의 열하(熱河)로의 소명과 헌신은 바로 고통 받는 자, 눌림을 받고 있는 자들을 향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거르며, 함께 싸우고 함께 고난을 받는, 주안에 있어서의 우정의 결정(結晶)이 아니었겠습니까?

    20년간 이상이나 피차별 부락(被差別 部落)을 위하여 일해오신 오가사오라(小笠原)목사님을 비롯한 여러 분들의 노력, 도처에서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부정한 세력과 대항해서 싸워오신 이이누마(飯沼二郞) 선생의 부단한 투쟁은 바로 주안에 있어서의 우정의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작년부터 한국어의 연수를 위해 서울의 연세대학교에 유학하고 있는 사에끼(佐伯勳)선생은 그 분주한 생활 중에서도 시간만 있으면 홀트 타운(신체장애아를 위한 시설)을 방문하여 자원봉사원으로서 열심히 장애아들을 돌보기 위하여 일하는 것을 보면서 이 것 역시 기다시라가와교회의 한 모습이 아닌가 생각하며 감명을 받았습니다. 한국이 박정권의 독재하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바로 그 와중에 오꾸다선생, 와다선생, 이이누마선생을 비롯한 5명의 이름으로 1974년 5월 5일자 미국의 유명한 '뉴욕 타임스'에 미국의 그리스도인에게 호소한다."는 성명서를 전면의 의견 광고 기사로 발표한 일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 사본을 오가사와라목사님께로 부터 받아 보고 감격을 했습니다. 다음 그림이 '뉴욕 타임스'의 일면 전부에 개제되었던 광고 기사입니다(그림 참조).

    이 때는 한국에서 박정권의 독재가 극에 달하였을 무렵인데 이 글의 내용은 한국민을 억압하고 있는 박정권을 지지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내용을 미국 그리스도인들에게 호소하는 성명서였습니다. 이 것을 보면서 그리스도인의 연대가 얼마나 귀중한가를 마음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와다선생도 이 성명서에 서명한 5명 중의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불랙리스트에 올라 한 번은 부산항을 통해서 한국에 오시는 도중에 출입국 관리소에서 걸려서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가신 일이 있습니다.

    공조(共助) 잡지 중에 이이누마선생이 쓰신 “주안에 있어서의 우정에 대하여”라는 글 중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쓰여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이누마선생은 월남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를 8년간 매달 한 번씩 80회 이상 계속하고 있는 중에 호주에서 학회가 있어서 2번 데모를 건늘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가 가장 추운 겨울이었는데 오꾸다 선생께서 그 노령에도 불구하고 이이누마 선생을 대신하여 그 두 번의 데모를 하셨다는 기록을 읽고 이것이야 말로 참말로 주안에 있어서의 우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도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어디를 여행하던지 언제나 이것이 최후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제가 기다시라가와교회를 방문하여 여러분과 얼굴을 마주 보는 것도 이것이 최후가 될런지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많습니다. 특히 오꾸다 선생과는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의 우정은 주님 안에서의 소망 중에 살면서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따라가는 우리들의 길가에서 언제까지나 위로와 힘을 되줄 것을 믿습니다.

    끝으로 나는 다시 한 번 오꾸다선생의 말씀을 반복하고저 합니다.

    '가라! 그리스도와 함께'
    '싸워라!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그리스도안의 우정은 우리들을 언제까지나 이 말씀과 함께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을 믿습니다.

    1995. 4. 29 (일본 교토관서 세미나 하우스에서 기다시라가와교회 창립 60주년 기념집회 강연)

머리말
그저 주어진 대로 산다
밀알 하나
들의 백합화를 보라
너의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
십자가의 길
병의 선용
죽음과 삶
향린의 태동과 초창기의 모습
초점을 가진 교회
내가 목마르다
그리스도와 함께 걸으며, 함께 싸우며 그리고 그리스도와 고난을 함께하는 교회
전쟁과의 전쟁
치료와 치유
지구의 암:인간
우리 몸의 지혜
마음의 고향
사랑의 날개
꿈에서나 그려보던 금강산
60년 만에 밟아보는 평양땅
6․25의 회상
미국의 패권주의와 아시아의 평화
시급히 북녘 어린이를 도웁시다
이라크 어린생명들의 비명
“일등만이 살아남는다”는 세계
야만의 시대
안병무(安炳茂) 형을 먼저 보내면서
야성(野聲)과 안병무(安炳茂)
행동하는 양심 -인간 홍근수
서울의대 가정의학과 창립 20주년을 축하하면서
인의협의 반 세대를 회고하며
의대생의 방학동안의 농촌 활동
서울의대 소아과 전공의와의 대화
대한소아과학회의 초창기
낙엽과 더불어
장애(障碍)의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생명의 기쁨
'평양 어깨동무 어린이병원' 준공에 즈음하여
60년에 되돌아보는 향린의 창립정신
교회라는 공동체
예수님이 계시는 곳
재일동포 인권을 위해 애썼던 이이누마 지로(飯沼 二郞) 교수의 서거를 애도하며
입춘대길(立春大吉)
본회퍼 - 우리 가슴속에 살아있는 신앙의 선배
박연폭포(朴淵瀑布)
김정애 권사를 생각하며
제주도 피난살이
늙어서 후회되는 일들
예수님과 신앙 선배의 임종
마음의 고향
너의 하느님은 어디 있느냐?
마음의 고향
교회라는 공동체
함께 걸어온 사람들
병과 치유
남은 이야기들
의사의 길을 걸으며
생명을 살리는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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