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료와 치유
  • 완전 치료가 되었던 백혈병 어린이

    오늘은 백혈병 환자들이 찾아오는 날이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혈액과 골수 검사를 하여 혹시 백혈병이 다지 도지지나 않았는지를 체크하여 그 결과를 가지고 부모와 만나는 날이다. 입학시험 합격자 발표를 보는 것보다 더 초조해하며 밖에서 기다리는 어머니들. 검사결과를 보고 괜찮으니 안심하고 돌아가도 되겠다는 말을 들은 어머니의 얼굴에는 기쁨의 꽃이 피어난다. 그러나 백혈병이란 몇 년 동안을 지켜보기 전에는 좋아졌다가도 언제 재발될지는 알 수 없는 병이다.

    그동안 부모님들의 초조함은 이로다 말할 수 없으며 그때 그때 새 생명을 받아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심정이다. 내가 미국에 가서 소아과를 공부하려 가기전만 해도 백혈병이란 진단은 그대로 사형선고를 의미했다. 소아에서 가장 많은 혈액의 암, 이 병에서 특별한 약이 없었던 당시에는 진단을 받고 수개월을 못 견디고 애들은 죽어갔다. 세균감염이나 출혈로 죽어갔다.

    그런데 이 병에 대한 치료약이나 한가지 두 가지씩 나오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생존하는 기간이 길어지고 살아남는 애도 생기기 시작하였다. 나는 미국에서 돌아오자 백혈병 환자에게 이 항암요법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백혈병 어린이들 중에 살아남는 것을 보며 한 없이 보람을 느끼며 이 아이들을 치료하는데 정성을 다하였다.

    그 중에서도 초창기에 치료해서 살아남은 어린이에게는 깊은 애정을 가지고 치료하게 되었다. 그 중에 한 남자애가 있었는데 생기기도 참 귀엽게 생기고 가정도 넉넉해서 여러 가지 치료를 하는데도 치료비 걱정을 할 필요없이 최상의 치료를 하였다. 그래서 그애는 다행이 완전 완해가 와서 부모와 함께 같이 기뻐했다. 그러나 백혈병은 언제 또다시 병이 재발될지 모르기 때문 ‘완치’라는 말을 쓰지 않고 ‘완쾌’라는 말을 쓴다. 그러데 이 어린이에게 고환에 백혈병 세포가 침식하여 재발을 일으키게 되었다. 그 때만해도 고환에 백혈병 침범이 오면 예후가 아주 좋지 않아 다시 완해가 오기 힘든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방사선 요법과 화학요법을 시작하여 다행이도 다시 좋아진 후로 다년간 재발이 없어서 완치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부모도 좋아했고 나도 무척 기뻤다. 그동안 그 어머니가 겪어야 했던 마음의 고통은 얼마나 컸는지 이것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애가 자라서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몸은 건강하였는데 친구를 잘못 사귄 탓인지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고 때로는 몇일 밤이나 집에 돌아오지 않고 부모의 애를 태우기 시작하였다.

    그 어머니가 얼마나 속을 태웠는지 차라리 그 때 백혈병으로 죽어 버렸더라면 좋을 뻔했다고까지 하면서 울먹이는 것이었다. 나도 속이 상해서 그 애를 몇 번 만나보았다. 만났을 때마다 네가 병을 앓을 때 얼마나 네 어머니가 너를 치료하느라고 고생을 했는지를 설명하면서 마음을 바로잡고 공부를 하도록 설득을 하였다. 그 애는 그 때마다 내말을 알아듣는 듯이 가서 열심히 하겠다고 하면서 집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러나 그 후로도 그는 결국 또다시 친구들과의 불규칙한 생활에 빠져들고 마침내는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는 슬픔 소식을 들었다. 내 자신도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그 애를 지도했으면 혹시나 좋아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죄책감까지 느끼게 되었다.

    지금은 어린이 백혈병의 70%는 생존하는 것으로 되어있으나 그 당시만해도 치료하기 힘든 병이었고 특히 고환에 재발까지 왔는데도 완치되는 예는 드물었다. 그의 병은 완전히 치료되었으나 그의 인생 전체를 치유해주지 못하였기 때문에 한 인생이 결국 젊은 나이로 피어보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픈 일이었다.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아이

    다음은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있으며 심장 수술을 두 번이나 받고 폐결핵과 능막염으로 오랫동안 치료를 받아야 했던 한 환자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편지이다. 다운 증후군(몽고인증)이란 염색체 이상으로 오는 선천성 이상인데 이 환자들 중에는 심한 심장병을 가지고 있는 수가 많으며 면역력이 약해서 전염병에 잘 걸린다. 뿐만 아니라 정신 발달 지연이 있어서 특수교육을 받아야 하고 일생동안 자기에 맞는 환경에서 도움을 받아가며 살아나가야 하는 것이다.

    선생님 보십시오.
    갑자기 날씨가 차가워졌습니다.
    오늘이 금요일이니까 외래 진료가 있는 날이겠군요.
    지금쯤 아마도 병으로 고통받는 어느 아이 환자와 그 어머니의 안타까운 모습에 진정으로 걱정해주시고 정성을 다해서 진료하시는 선생님의 진지한 모습을 그려봅니다.
    너무도 인간적이고 숭고하고 아름다운 한폭의 그림입니다.
    올해는 두 번밖에 뵙지 못했습니다. 병원에는 자주 가지않는게 좋다고들 얘기하지요. 그렇지만 우리 정이가 20년 넘게 자라온 동안 이렇게 한가롭고 여유있고 느긋한 마음으로 병원을 다닌 적은 없었습니다.
    생각하기도 싫은 많은 날들을 우리 식구는 잊고 싶은 마음 또 아픈 과거이기 보다는 잊혀지지 않는 많은 사람들과 고마운 분들로 인해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바쁘신 중에 답장해주신 격려의 편지 또한 보이지 않는 든든한 힘이 될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부족한 힘이지만 장애인 부모를 위한 상담, 다운증후군 아동의 학습지도, 수영지도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 아이(정이)를 키우며 오히려 저를 낮추고 인내하는 힘, 이겨내는 힘, 남을 생각할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 조금이라도 베풀고 싶은 마음 등 이루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고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은 그건 저 뿐만이 아닙니다.
    그 아이는 저 보다 더 열심히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기특하고 신통해서 인지 주위 어른들이 모두 대견해 하십니다. 장애인이지만 당당하게 생활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오후 4시에 퇴근합니다. 한달에 1~2번 정도는 부서 책임자와 면담 시간을 갖습니다. 문제점, 어려운 점, 개선해야 할 점등을 지적 보완하기 위한 만남이죠.
    항상 주위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협조해서 도울 부분을 약간만 도와 준다면 장애인도 자기에 맞는 어떤 일을 찾아서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론 자기 자신과 가족이 우선 치밀한 준비와 단계를 밟아 사전계획이 필요하겠지요. 또 한가지는 피곤하지 않도록 영양 섭취와 비만 방지를 위한 음식 조절 식하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간식과 휴식을 취한 후 1시간 정도 컴퓨터 학원에 가서 컴퓨터를 익힙니다. 토요일은 탁구를 30분씩 배웁니다. 장애아라고 해서 아무것도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가장 피해야 할 무서운 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능하면 본인의 의사나 희망하는 모든 것들을 이용하고 배우고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마땅히 장애아들도 정상인과 똑같은 권리를 갖고 있으며 우리 비 장애인들이 그것을 일방적으로 생각하고 빼앗을 권리는 아무데도 없겠지요.
    글쎄 지금까지는 어려운 고비를 조심조심 잘 견디며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선생님 무리하지 마십시오.
    한해가 이렇듯 허무하게 그냥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기쁨은 있었습니다. 지난번 진료실에서의 면담, 대화, 저희가 받은 격려의 답장은 1994년을 영원히 잊지 못하는 한해는 만들어버리기에 충분했습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정말 건강하십시오. 새해에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1994년을 보내면서 김정 어머니 드림

    다운증후군은 선천성 질환이기 때문에 그 병은 일생동안 가지고 살 수 밖에 없고 그 병자체를 고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아이의 경우에도 심장병은 두 번이나 수술을 하여 고칠 수 있었으며 폐결핵도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결국 치료할 수 있는 병이었다. 그러나 이 어린이들이 타고난 지능 지체 상태는 그대로 가지고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의학으로도 어찌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하면 그가 가지고 있는 능력안에서 그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며 보람을 가지고 살아나갈 수 있게 하느냐하는 것이다. 다운증후군 환자는 대개가 인간성이 온유하며 참 순해서 옆에서 잘 도와주면 원만한 인간관계를 가지고 그 나름대로 재미있는 생을 보낼 수 있게 해줄 수 있다.

    즉, 병 자체는 치료는 안되지만 그의 생은 치유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부모와 의사와 사회가 한 인생을 치유하기 위하여 유기적으로 애쓰고 돌보아 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의사생활 50년

    금년이면 의과대학을 졸업을 하고 환자를 보기 시작한지 만 50년이 해이다. 반세기라는 긴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환자를 보았을까? 이보다 헤아릴 수 없는 수이다. 때로는 끊어져가는 생명을 살려볼려고 밤을 세운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내가 의국생활을 하고 있을때에는 지금같이 아무 때나 피를 구할 수 있는 혈액은행이 없어서 내 피를 뽑아서 수혈을 해야하는 수도 있었다. 환자의 아버지의 피를 검사해서 혈액형이 맞으면 수혈을 하도록 하자고 환자어머니께 이야기하면 그 어머니는 애기 아빠는 몸이 약해서 피를 뽑을 수 없다는 것이다. 피를 뽑는 것을 그렇게 싫어해서 자기 자식에게 뽑아주는 것조차도 거절하는 것이다. 의사가 환자를 아무리 생각한다해도 환자의 부모같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부모 다음으로는 의사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위독한 환자를 병실에 두고온 날은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것이 환자를 맡은 담당의사일 것이다.

    50년간 나에게 치료를 받고 떠나간 많은 환자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요즈음은 할머니와 어머니가 아기를 데리고 와서‘이 애의 엄마 아기 때 선생님께 치료를 받고 나았는데 건강하게 자라서 지금 이렇게 어머니가 되어 자기 애를 데리고 왔어요. 선생님 잘 부탁해요.’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 아기는 내가 옛날 치료했던 그 어머니가 어렸을 때 모습을 꼭 닮았다. 내가 오래도 살았구나 하고 생각해본다.

    그 많은 어린이들이 병은 치료받고 커서 어른이 되었으나 과연 인간적으로 얼마나 건강하고 보람있는 인생을 보내고 있을까? 병을 치료하는 궁국적인 목적은 그가 바람직한 인간으로 치유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의사의 직업은 결국 목회(牧會)와 연결이 되어야 그 목적을 다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 세상에는 병을 그대로 가지고 살아야 하는 병이 얼마나 많은 지 알 수 없다. 그런 병들이 점점 더 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병들은 우리가 치료할 수는 없으나 그 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주어진 여건안에서 보람있는 생을 보내게 할 수는 있다.

    그것이 의사가 해야할 더 중요한 역할이다.

머리말
그저 주어진 대로 산다
밀알 하나
들의 백합화를 보라
너의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
십자가의 길
병의 선용
죽음과 삶
향린의 태동과 초창기의 모습
초점을 가진 교회
내가 목마르다
그리스도와 함께 걸으며, 함께 싸우며 그리고 그리스도와 고난을 함께하는 교회
전쟁과의 전쟁
치료와 치유
지구의 암:인간
우리 몸의 지혜
마음의 고향
사랑의 날개
꿈에서나 그려보던 금강산
60년 만에 밟아보는 평양땅
6․25의 회상
미국의 패권주의와 아시아의 평화
시급히 북녘 어린이를 도웁시다
이라크 어린생명들의 비명
“일등만이 살아남는다”는 세계
야만의 시대
안병무(安炳茂) 형을 먼저 보내면서
야성(野聲)과 안병무(安炳茂)
행동하는 양심 -인간 홍근수
서울의대 가정의학과 창립 20주년을 축하하면서
인의협의 반 세대를 회고하며
의대생의 방학동안의 농촌 활동
서울의대 소아과 전공의와의 대화
대한소아과학회의 초창기
낙엽과 더불어
장애(障碍)의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생명의 기쁨
'평양 어깨동무 어린이병원' 준공에 즈음하여
60년에 되돌아보는 향린의 창립정신
교회라는 공동체
예수님이 계시는 곳
재일동포 인권을 위해 애썼던 이이누마 지로(飯沼 二郞) 교수의 서거를 애도하며
입춘대길(立春大吉)
본회퍼 - 우리 가슴속에 살아있는 신앙의 선배
박연폭포(朴淵瀑布)
김정애 권사를 생각하며
제주도 피난살이
늙어서 후회되는 일들
예수님과 신앙 선배의 임종
마음의 고향
너의 하느님은 어디 있느냐?
마음의 고향
교회라는 공동체
함께 걸어온 사람들
병과 치유
남은 이야기들
의사의 길을 걸으며
생명을 살리는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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