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병무(安炳茂) 형을 먼저 보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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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安兄! 목이 메어 내가 말을 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소. 지금도 우면동 산기슬기에 있는 집을 찾아가면 반가워하는 安兄의 얼굴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분주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만나볼 수 있을 동안에 자주 찾아가 보지도 못하고 결국 安兄을 이렇게 보내고 마는 구려. 安兄의 건강이 조금만 좋아지면 어디가서 식사라도 같이하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할 수 없게 되었구려.

    모진 투병 생활중에서도 누구나가 그저 쉽게 읽을 수 있는 새로운 성서번역을 쓰기 위하여 마지막 남은 정력을 다 쏟아 부어 왔는데 골로새서 3장까지만 써 놓고 그대로 떠나가면 나머지는 누가 쓰라고 하는겁니까?

    安兄과 처음 만나게 된 것이 1946년 이었으니 금년이 꼭 50년이 되는 해가 아닙니까? 돌이켜 보면 50년간의 安兄과의 추억이 주마등 같이 눈앞을 스쳐가는 구려.

    6․25가 터져 일신회(一信會) 동지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피난 생활을 하고 있을 때 安兄은 그 동지들의 피난처를 일일이 찾아 다니며 서로 연결을 시켰섰지요. 내가 있는 제주도 한림까지 배를 타고 찾아와 1주일 동안 한림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며 함께 우정을 나누었지요. 나는 그때 고마움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형의 뜨거운 우정이 우리를 하나로 뭉치게 하여 아직 포성이 울리고 있는 서울로 우리를 모이게 하여 향린교회를 만들게 되었지요. 삶을 나누는 생활 공동체로서의 교회, 그것이 향린교회의 창립정신이었지요. 그것을 끝내 이루지 못한 것은 우리 인간의 나약함의 탓이지 그 정신이 잘못된 것은 아니였지요.

    安兄은 그 후로 독일로 가서 신학을 공부하였지요. 그러나 그 신학은 그저 학문을 위한 신학이 아니라 예수를 알기위한 방법이었지요. 예수가 좋아서 예수의 마음을 알고 싶어서, 한없이 그를 따라서 걸어간 것이 安兄의 일생이었지요.

    安兄! 나는 安兄속에서 참 “인간”을 찾아볼 수 있었소. 安兄의 아호(雅號)가 심원(心園)이었듯이 安兄과 마주 앉으면 마치 푸른 초원이 앉아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하고 언제까지나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의 동산이었지요. 그 동산은 넓고 넓어서 모든 사람을 감싸주고 위로하고 힘을 주고 그러면서 예수의 길로 인도해 주었지요. 언님 하나하나를 만나 대화하고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그들의 참 벗이 되어 주었지요. 이제 安兄이 떠나면 그 동산의 빈 부분을 누구가 메꾸어 줄 것입니까?

    安兄이 이루어 놓은 신학의 깊이를 나같은 평신도가 알 리가 없지요. 그러나 아이로니칼하게도 安兄의 관위에 평신도에게 쓰여지는 ‘성도 안병무’라고 쓰여졌지요. 관을 덮는 명전에는 교회 직분에 따라 목사, 장로, 집사 등의 직분의 이름이 쓰여지는데 입관을 하는 직원이 이 분의 직분이 무엇이냐고 물어보기에 생각해 보니 安兄은 목사도 아니고 장로도 아니고 집사도 아니라고 했더니 결곡 “성도 안병무”로 기입되고 말았지요. 일생 예수를 그저 따라가기만 한 安兄은 결국 끝까지 하나의 평신도로 머물러 있었지요. 향린교회도 원래 평신도 교회로 시작했었지요.

    1976년 구국선언 때문에 영모의 몸이 되었을 때 얻은 심장병으로 인하여 安兄은 그 후 20년동안을 살아오면서 몇차례나 생사의 경계선을 넘으며 죽음을 경험하였지요. 사실 安兄의 심장을 의사가 들여다보면 그 심장을 가지고 20년간이나 그렇게 활동을 하며 살았다는 것이 기적같이만 느껴져요.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는 하느님의 뜻이 있었기에 그것이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安兄이 강단에 설때에도 이것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는 순교자의 심정으로 설교할 때가 여러번 있었지요. 그러나 일단 강단에 서면 타오르는 정렬을 가지고 예수를 증거했지요. 나는 강단에 선 安兄을 쳐다보며 그저 무사히 설교를 끝마치고 강단을 내려오기만 고대하였던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지요.

    安兄! 지난 여름에는 나한테는 아무 말도 없이 그 심장을 가지고 1주일 간이나 중국 연변, 용정을 다녀왔지요. 물론 내가 알았으면 만류했을 터이니 그랬을 것으로 생각했지요. 어려서 살았던 마음의 고향을 찾아가 보고 싶은 심정을 왜 모르겠어요. 해방 50년이 지난 오늘날 분단의 장벽은 오히려 높아만가는 이 현실을 바라보며, 그리고 죽음을 무릎쓰고 고향을 찾아야 했던 安兄의 마음을 생각하며 우리는 이 민족의 통일을 위하여 무엇이라도 해야 되겠다는 결심을 새삼스럽게 하게 되는군요.

    끝으로 나는 安兄의 글을 지금 다시 한번 같이 읽어 보고 싶어요. 그것은 “친구여! 가자 십자가의 길을”이라는 글입니다.

    친구여 가자 하늘나라로 향해 가자
    그길이 좁으면 내 가진 것 버리고 가자
    그래도 좁으면 알몸으로 가자
    그래도 안되면 내 사지를 찢고라도 가자
    가자. 친구여! 고독한 이길로 그대로 가자
    이 길은 남이 걷지 않는 길
    때로는 나와 내 그림자 만이
    걸어가야 하는 길

    가다가 가다가 아프면
    상수리 나무 아래서 쉬어서 가자
    목이 마르면 야곱의 샘에서 마시고 가자
    가다가 날이 저물면 여호와의 장막에서 머물러 가자
    가다가 가다가 심장이 터지면
    목은 십자가 깔리면서라도
    눈은 그 나라로 향하고 가자

    安兄! 이 글이 바로 安兄이 걸어온 길이 아니었던가요?

    하늘나라 라고 하면 아득히 먼 나라인줄만 알았는데 이제 安兄이 그 나라로 가고 보니 그 나라는 바로 내 옆에 있는 나라이었어요. 아니, 이제는 그 나라와 이 나라가 아무 구별도 없는 나라가 되었어요.

    편안히 잠든 듯이 누워 있는 최후의 安兄의 얼굴, 심장은 기능을 멈추었지만 부르면 눈을 뜨고 쳐다보면 兄의 신선은 분명히 하늘나라를 향해 있었지요. 兄은 이번에 입원를 하면서 임종을 예감해섰던지 명을 오래 끌기 위하여 억지로 치료하지 않도록 나한테 부탁했었지요. 그래서 인공절으로 오래 끄는 처지는 하지 않았었지요.

    운명하기 전날 밤 安兄은 흰 옷을 입고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꿈을 꾸었다지요? 하늘나라! 그 곳은 주님이 계신 나라. 安兄이 일생동안 그리워 하던 그 주님이 계신 나라. 그리고 安兄 어머니가 계신 나라. 兄이여! 이제는 그 나라에서 편히 쉬소서.

    이 땅에서 安兄이 사랑하는 박영숙 선생, 재권이, 안병택 선생, 정임이, 그리고 모든 친척들, 安兄을 사모하며 따르는 후학들, 언님들, 그리고 安兄의 글을 통하여 安兄이 전한 예수를 따르려고 애쓰는 많은 무리들이 있지 않아요.

    이 모든 사람들을 통하여 安兄은 계속 이 땅위에 살아있을 것입니다. 힘차게 살아 있을 것입니다. 민중들 속에 들풀처럼 뿌리를 내리고 번식하여 나갈 것입니다.

    安兄이 시작했던 교회들, 한국신학연구소, 다아코니아 자매회, 아우네 재단, 이들도 다 잘되어 나갈 것입니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 볼 것입니다. 이제는 혹사했던 安兄의 심장에게 휴식을 주며 고히 잠드소서. 이 세상이나 저 세상이나 한 주님이 섭리하시는 나라이기에 우리는 주님의 섭리를 믿고 安兄을 그 나라로 보내드립니다.

    安兄! 그 동안 잘 있어요. 얼마 안되어 주님이 부르시면 저희들도 따라 갈 것입니다. 다시 만날때까지 안녕!

    (1996년 10월 21일, 영결식 조사)

머리말
그저 주어진 대로 산다
밀알 하나
들의 백합화를 보라
너의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
십자가의 길
병의 선용
죽음과 삶
향린의 태동과 초창기의 모습
초점을 가진 교회
내가 목마르다
그리스도와 함께 걸으며, 함께 싸우며 그리고 그리스도와 고난을 함께하는 교회
전쟁과의 전쟁
치료와 치유
지구의 암:인간
우리 몸의 지혜
마음의 고향
사랑의 날개
꿈에서나 그려보던 금강산
60년 만에 밟아보는 평양땅
6․25의 회상
미국의 패권주의와 아시아의 평화
시급히 북녘 어린이를 도웁시다
이라크 어린생명들의 비명
“일등만이 살아남는다”는 세계
야만의 시대
안병무(安炳茂) 형을 먼저 보내면서
야성(野聲)과 안병무(安炳茂)
행동하는 양심 -인간 홍근수
서울의대 가정의학과 창립 20주년을 축하하면서
인의협의 반 세대를 회고하며
의대생의 방학동안의 농촌 활동
서울의대 소아과 전공의와의 대화
대한소아과학회의 초창기
낙엽과 더불어
장애(障碍)의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생명의 기쁨
'평양 어깨동무 어린이병원' 준공에 즈음하여
60년에 되돌아보는 향린의 창립정신
교회라는 공동체
예수님이 계시는 곳
재일동포 인권을 위해 애썼던 이이누마 지로(飯沼 二郞) 교수의 서거를 애도하며
입춘대길(立春大吉)
본회퍼 - 우리 가슴속에 살아있는 신앙의 선배
박연폭포(朴淵瀑布)
김정애 권사를 생각하며
제주도 피난살이
늙어서 후회되는 일들
예수님과 신앙 선배의 임종
마음의 고향
너의 하느님은 어디 있느냐?
마음의 고향
교회라는 공동체
함께 걸어온 사람들
병과 치유
남은 이야기들
의사의 길을 걸으며
생명을 살리는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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