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의대 가정의학과 창립 20주년을 축하하면서
  • 서울대학교 병원 가정의학과 창립 20주년을 맞이하면서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이 과를 시작하였던 저로서는 남달리 깊은 감회를 느끼게 됩니다.

    미국의 전문의 제도가 우리나라에 도입되므로서 우리나라의 의료수준을 향상시킨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러나 일반의에 대해서는 졸업 후 교육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단과 전문의에 대해서만 5년간의 졸업 후 교육을 시행함으로서 일반의와 단과전문의 사이에 실력의 격차를 초래하여 환자로 하여금 단과전문의를 선호하게 만들고 나아가서는 거의 모든 의과대학생들이 단과전문의 과정을 밟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단과전문의를 과잉 배출하게 되었고 자기의 전문과목 환자만으로는 부족하여 자기의 전문아닌 타과의 한자까지 보게 되므로서 전문성을 잃고 일반의로서의 수련도 없이 일반의의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인력과 시간의 낭비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단과전문의만을 양성하므로서 의료는 세분화되고 단편화되었으며 비인간화되고 필요이상으로 고급화되어 의료비의 상승을 가져와서 국가의 재정적 압박을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의학적 문제는 미국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어 결국 가정의 제도가 생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가 결국 우리나라에서도 뒤늦게 나타났던 것입니다.

    1959년부터 1년동안 ICA원조계획에 의하여 미네소타대학으로부터 서울의대 소아과에 교환교수로 와 있었던 Eldon Berglund 교수는 가정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Hennepin County Medical Center에 가정의학과를 창설하고 과장이 되었습니다. 그 분은 한국의 사정을 잘 알고 되었습니다. 그 분은 한국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고 또 한국을 사랑했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가정의 제도가 도입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저에게 누누이 설명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정의학의 교과과정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과장으로 있는 미네아포리스의 가정의학과를 방문하여 실제로 하고 있는 상황을 시찰하고 돌아왔었습니다.

    그 후 서울대학교병원 과장회의에서 가정의학에 관한 내용을 소개하였더니 많은 교수들이 이에 호응하여 관심을 가져주었습니다. 또한 의과대학 학생들도 가정의학 수련 과정이 생기면 그 과정을 밟고 싶다는 학생이 많았습니다. 이 같은 절실한 요청에 따라 1979년 9월에 마침내 서울대학교병원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가정의학과가 창설되어 그 당시 서울대학교병원 부원장이었던 제가 가정의학과장을 겸임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병원장이 되면서 내과 최규완교수가 과장직을 맡았다가 1981년 9월에 허봉렬교수가 가정의학과를 전담하는 과장으로 부임하여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이같이 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는 20년전에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으로 창립되었으나 이 과가 의과대학에서 한 교실로 되기까지는 18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이 걸렸으며 1997년 이순형 학장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교실로 되었습니다. 미국에서도 소위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대학일수록 새로운 교과과정이 잘 받아드려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20년이라는 역사속에서 가정의학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나가는 보람도 컸으나 그 뒤에는 남모르는 애로와 서글픔도 많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한편으로는 뒤에서 관심을 가지고 격려하고 도와주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특히 초창기에 Berglund 교수의 추천으로 오셨던 Vincent Hunt 교수(현재 Brown 의대 가정의학과 과장)은 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에 와서 기초를 다지는데 도움을 주셨고 그 후로도 계속 관심을 가지고 격려를 해주시고 있으며 이번 20주년 기념행사에도 참석하여 주셨습니다.

    지난 20년간에 걸쳐서 서울대학교 가정의학과를 이렇게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초창기부터 한골수로 온갖 정력을 다 쏟아 부은 허봉령 교수의 헌신적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많은 시련과 압박을 그의 온유한 성품과 강인한 인내력으로 극복하며 꾸준히 내심을 다지며 쌓아올린 그의 노고는 서울대학교 가정의학과를 굳건한 반석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또한 미국에서 가정의학을 연수하고 돌아온 유태우선생이 1990년부터 본과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는 것을 보며 마음 든든하게 생각합니다.

    그동안 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에서 배출한 가정의학 전문의 수는 177명에 달하며 그 중에는 타 대학병원, 종합 병원 또는 공공기관의 과장 또는 책임자로 일하고 있는 동문이 무려 50여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실로 막중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또한 그만큼 책임이 무겁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개원을 하고 있는 동문들도 긍지를 갖고 열심히 진료를 하고 있으며 환자들에 대해 인간적이고 친절하다고 평판을 듣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얼마안 있어 21세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지금은 세계화, 정보화의 세계화라고 합니다. 일등만이 살아남는다는 목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대하고 있는 인간은 양(量)적으로 대할 수 없는, 개별적으로 하나하나가 귀중한 존재입니다. 시대가 어떻게 바뀌든 환자를 인간적으로 그리고 전인적(全人的)으로 대해야 된다는 것은 가정의학의 생명입니다. 그러면서도 가정의는 섬세하고 과학적이어야 합니다. 일상적이고 흔한 질병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더 자신이 있어야 하며 누구보다 더 과학적이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정의학에서도 많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창립 20주년을 맞이하며, 또한 21세기를 앞에 놓고 이것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새로운 계획과 결심을 가지고 출발하는 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저의 축사의 말씀을 가늠합니다.

    1999년 9월

머리말
그저 주어진 대로 산다
밀알 하나
들의 백합화를 보라
너의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
십자가의 길
병의 선용
죽음과 삶
향린의 태동과 초창기의 모습
초점을 가진 교회
내가 목마르다
그리스도와 함께 걸으며, 함께 싸우며 그리고 그리스도와 고난을 함께하는 교회
전쟁과의 전쟁
치료와 치유
지구의 암:인간
우리 몸의 지혜
마음의 고향
사랑의 날개
꿈에서나 그려보던 금강산
60년 만에 밟아보는 평양땅
6․25의 회상
미국의 패권주의와 아시아의 평화
시급히 북녘 어린이를 도웁시다
이라크 어린생명들의 비명
“일등만이 살아남는다”는 세계
야만의 시대
안병무(安炳茂) 형을 먼저 보내면서
야성(野聲)과 안병무(安炳茂)
행동하는 양심 -인간 홍근수
서울의대 가정의학과 창립 20주년을 축하하면서
인의협의 반 세대를 회고하며
의대생의 방학동안의 농촌 활동
서울의대 소아과 전공의와의 대화
대한소아과학회의 초창기
낙엽과 더불어
장애(障碍)의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생명의 기쁨
'평양 어깨동무 어린이병원' 준공에 즈음하여
60년에 되돌아보는 향린의 창립정신
교회라는 공동체
예수님이 계시는 곳
재일동포 인권을 위해 애썼던 이이누마 지로(飯沼 二郞) 교수의 서거를 애도하며
입춘대길(立春大吉)
본회퍼 - 우리 가슴속에 살아있는 신앙의 선배
박연폭포(朴淵瀑布)
김정애 권사를 생각하며
제주도 피난살이
늙어서 후회되는 일들
예수님과 신앙 선배의 임종
마음의 고향
너의 하느님은 어디 있느냐?
마음의 고향
교회라는 공동체
함께 걸어온 사람들
병과 치유
남은 이야기들
의사의 길을 걸으며
생명을 살리는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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