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 어린이 같은 키로 어깨동무…"(중앙일보, 2003.06.24)
  • "인간의 뇌 조직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생후 2년까지 약 80%가 성장합니다. 따라서 이 시기에 영양실조에 걸리면 평생 신체적·정서적으로 발육에 지장을 받게 됩니다. 지금 북한 어린이를 돕는다면 10∼20년 후 통일이 됐을 때 남북한 어린이들이 같은 키로 어깨동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홍창의(洪彰義·80)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는 자신이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단법인 남북어린이어깨동무(공동대표 권근술·정명훈·조형)가 오는 9월 개원하는 평양 어린이영양증진센터와 관련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번 센터 설립으로 영양실조로 인한 북한 어린이들의 고통이 다소나마 해소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보다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져줄 것을 부탁했다.

    洪교수는 지난해 2월 남북어린이어깨동무 대표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해 북한 어린이영양관리연구소와 센터 설립에 합의하기도 했다.

    어린이영양증진센터는 어린이 환자들을 위한 설사 진료소·검사실·구강진료소·입원실·놀이방 등이 입주하는 병원(지하 1층, 지상 3층)과 두유 제조공장(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구성된다. 연건평 1천8백평 규모다. 이 센터는 영양 증진을 위한 각종 교육·연구도 진행한다. 1998년 6월 평화교육과 북한 어린이 지원을 위해 설립된 남북어린이어깨동무는 그동안 북한에 두유 생산 설비를 설립했고, 구충제·항생제 등 각종 의약품을 지원했다. 이번 센터 설립 과정에선 자재·설비·약품·기술을 제공했다.

    그는 영양상태가 나쁜 어린이들은 사망확률도 크다고 지적했다. 면역력이 떨어진 탓에 사소한 전염병도 이겨낼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영양실조 상태의 어린이는 단순한 설사·폐렴에도 생명을 잃고, 홍역에 걸리면 건강한 어린이들보다 사망률이 네배나 높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동포 지원에 대한 세간의 따가운 시선에 대해 '인간애'를 호소했다.

    "이 지구상 어디에서 같은 민족끼리 한 쪽에서는 비만아가 많아 골치고, 다른 쪽에선 먹을 것이 없어 죽어가는 모습을 찾아보겠어요.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때 공산당 지배 아래 기근에 허덕이던 에티오피아 국민을 지원했습니다. 그는 당시 '굶주린 아이는 정치를 모른다(A hungry child knows no politics)'라는 말로 반대 여론을 잠재웠습니다. 레이건은 다른 민족인 에디오피아를 도왔는데, 죽어가는 동족 어린이들을 어떻게 나몰라라 할 수 있겠어요."

    洪교수는 황해도 황주가 고향인 실향민이다. 해방 전 혈혈단신으로 고향을 떠나와 어머님과 동생들의 생사를 알지 못한다.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냈지만 아직껏 아무런 소식이 없다고 한다.

    "지금도 고향마을을 둘러싸고 있던 야트막한 산자락에 눈에 선합니다. 마을사람들이 정겹게 예배를 보았던 교회당, 어머니가 저를 배웅해 주던 동구밖도 눈 앞에 아른거립니다. 생전에 고향땅을 밟아보고 싶지만 이뤄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평생 사회적 약자들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서울대 의대 재학 시절에 학내 서클 '기독학생회'를 통해 방학 때마다 무의촌 진료를 했다. 서울대 교수가 된 후에도 20여년간 학생들의 봉사활동을 지도했다. 88년 서울대에서 정년퇴임한 뒤에도 10년간 서울 아산병원에서 소아과 환자들을 돌보다 98년 75세 때 현업에서 물러났다. 또 87년 인도주의의사실천협의회(인의협)의 출범에도 참여해 그동안 인의협 이사장·고문 등을 지냈다.

    그는 의사가 각각의 질병에 대해 많이 아는 전문가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환자를 볼 때 병을 앓고 있는 '인간'을 고치고 있다는 생각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의사가 사람이 질병에 걸릴 수밖에 없는 사회적 환경·구조에도 관심을 가져야 환자를 전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전인적(全人的) 치료'가 가능합니다. 이번 센터 설립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양부족·설사로 죽어가는 어린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데 이념이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남북어린이어깨동무는 평양 어린이영양증진센터 개관을 앞두고 운영기금을 모으기 위해 25일 오후 6시30분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어깨동무 평화기금' 위원회 발족식 및 후원의 밤 행사를 갖는다.

    (하재식 기자)

1973.10.25
1999.12.29
2003.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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