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의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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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물으셨다. “너희도 나를 떠나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 (요한 6:67-68)

    오래전 이야기인데 미국 타임(Time)지 표지에 아무 그림도 없이 검은 배경 위에 “신은 죽었는가?(Is God Dead?)” 라는 3단어가 큼직하게 나온 일이 있다. 이 호에서는 소위 사신론(死神論) 신학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그리스도교의 신은 어떤 철학자가 나와서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다고 해서 그의 존재가 없어지거나 반대로 어떤 유명한 과학자가 나와서 그의 존재를 증명했다고 해서 조금이라도 그의 존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에 있어서의 신의 문제는 “너도 나를 따르려느냐?”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에 있는 것이다. “주님이 아시는 대로 제가 주님밖에 어디로 갈 데가 있겠습니까?” 하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마음에 있다. 그 주님을 향한 한 마음, 그와의 관계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의미를 갖게 되는 그 이, 그 이가 산 그리스도요, 거기에 산 하나님이 있는 것이다.

    <마야>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거기에 나오는 여 주인공이 임종을 맞이하여 자기의 죽음을 지켜보며 슬퍼하는 자기 애인에게 이렇게 최후의 말을 남기도 간다. “내가 죽거든 부디 스페인의 모든 얼굴 가운데서 나를 찾아 주시요.”

    우리가 진정 예수를 그리워한다면 이 세상의 모든 것들 안에서 그를 찾아보게 될 것이다. 공중 나는 새를 볼 때 그를 생각하게 되고, 들에 핀 백합화를 볼 때 그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나를 향하여 애원하는 눈동자 속에서 그를 찾아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신이 살았느냐, 죽었느냐? 하는 추상적인 질문은 그 질문자체가 건조하고 의미 없는 질문이다. 잡지 기사로서 흥미꺼리가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구체적으로 매일을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아무 흥미도 없는 문제이다.

    지금 우리는 베드로같이 살아계신 주님을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우리에게 남기고 간 모든 존재 속에서 살아있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성 테레사는 ?하느님께 드리는 선물?이라는 책 가운데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랑하는 주님이시여! 당신은 병든 사람, 헐벗은 사람, 집 없는 사람 안에 계십니다.” “그리스도는 지금 보이지 않으므로 그리스도 자신에게 우리들의 사랑을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불쌍한 사람은 언제나 내 눈앞에 보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내 앞에 나타나셨다면 그에게 해 드리고 싶은 것을 그 이웃에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가장 사랑했던 베드로는 주님의 무름에 대답했다. “제가 주를 떠나서 어디로 간다는 말씀입니까? 나는 이제는 살아도 주님과 같이 살고 죽어도 주님과 같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베드로의 대답이었다. 주님을 향한 한 마음, 예수에게로 밖에는 갈 곳이 없는 자,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키에르케고르나 본회퍼의 마음속을 감돌고 있었던 중심 사상도 결국 이 주님을 향한 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뉘께로 가리이까?” 그가 갈 곳은 살아있는 주님밖에 없었다.

    예수를 따르던 많은 제자들이 하나씩 둘씩 주님 곁을 떠났다. 자기가 살던 고향으로 돌아가 어부들은 다시 고기잡이를 하였고 농부들은 다시 농사를 지었다. 그대로 예수만 따라다니다가는 자기만 손해를 볼 것 같았다. 나도 내 살 궁리를 찾아야하겠다고 생각했다. 예수님의 마음은 몹시 쓸쓸하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얼마 남지 않은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도 가려느냐?”고 물으시는 것이었다.

    우리 몸에 걸치고 다니는 옷이나 장식구는 평소에는 벗어 놓았다가 나갈 때에는 또 걸치고 나간다. 그것은 내 몸의 살아있는 부분이아니라 겉에 걸치고 있는 장식구에 불과하다. 평시에는 벗어놓았다가 교회에 나갈 때만 잠시 걸치고 나가는 장신구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이미 죽은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신(神)은 하나의 장신구가 되어있는 것이다. 처지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설교를 듣고 아름다운 성가대의 음악에 한 주일 동안의 피로를 풀며, 예배가 끝나면 또 식사도 나누고 다방에 가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면서 친교를 한다. 교회에서 집으로 돌아가서 그때부터 전개되는 생활은 일반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다. 그의 생활의 어느 구석에서도 일반 사람과 다른 점은 찾아볼 수 없다. 그리스도인에게서 하나님은 이미 죽은 것이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사형선고를 한 것보다 실제로 더 철저하게 신은 죽어 있는 것이다. 공산주의가 종교를 말살하기 위하여 신은 죽었다고 떠들 필요도 없었다. 그리스도인의 삶속에서 신은 이미 죽은 지 오래인 것을...

    신은 죽었다고 사신론자(死神論者)들은 떠들고 있다. 그러나 사신론자들이 신은 죽었다고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교 안에서 신은 죽었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한국에는 전 인구의 4분의 1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 일이요일이 되면 교회는 교인으로 가득 찬다. 교인이 넘쳐흘러서 2부 예배, 3부예배로 나누어 예배를 보고 있다. 가히 기독교 국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부 대형교회들의 행태를 볼 때 참으로 흉악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수구세력과 합작하여 이 땅을 반기독교적인 사회로 몰고 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하늘 높은 어떤 곳에 점잖게 앉아있는, 그런 신은 인간이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날아다니게 된 오늘날에는 어린아이들도 믿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머리 안에서 생각했던 신, 철학자들이 추상해낸 신, 그런 신은 죽은 신이다. 거기에는 고양이는 고양이모습대로 신을 만든다는 말이 타당할 것이다. 인간은 자기에게 편리한 신을 만들어내어 그것을 믿고 있다.

    문제는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도전하고 있는 무신론자들의 부르짖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말하는 신이 자신 속에서 죽어있다 데 있는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은 저 높은 보좌에 앉아계시는 분은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자 안에 숨어계시는 하나님(The hidden God) 이다.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은 그의 능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의 약함과 고통을 통해서 그를 나타낸다. 한 인간이 그 숨어 계시는 하나님과 만나게 되었을 때 그는 ‘내가 이제 주님을 떠나서 어디로 가오리까?’ 라고 고백을 하게 된다. 그 고백이 신앙이다.

    과학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자기의 한계를 아는 것이다. 과학이 자기의 한계를 모르고 자기의 잣대를 가지고 모든 것을 판단하려고 할 때 그것은 이미 과학은 아니다.

머리말
그저 주어진 대로 산다
밀알 하나
들의 백합화를 보라
너의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
십자가의 길
병의 선용
죽음과 삶
향린의 태동과 초창기의 모습
초점을 가진 교회
내가 목마르다
그리스도와 함께 걸으며, 함께 싸우며 그리고 그리스도와 고난을 함께하는 교회
전쟁과의 전쟁
치료와 치유
지구의 암:인간
우리 몸의 지혜
마음의 고향
사랑의 날개
꿈에서나 그려보던 금강산
60년 만에 밟아보는 평양땅
6․25의 회상
미국의 패권주의와 아시아의 평화
시급히 북녘 어린이를 도웁시다
이라크 어린생명들의 비명
“일등만이 살아남는다”는 세계
야만의 시대
안병무(安炳茂) 형을 먼저 보내면서
야성(野聲)과 안병무(安炳茂)
행동하는 양심 -인간 홍근수
서울의대 가정의학과 창립 20주년을 축하하면서
인의협의 반 세대를 회고하며
의대생의 방학동안의 농촌 활동
서울의대 소아과 전공의와의 대화
대한소아과학회의 초창기
낙엽과 더불어
장애(障碍)의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생명의 기쁨
'평양 어깨동무 어린이병원' 준공에 즈음하여
60년에 되돌아보는 향린의 창립정신
교회라는 공동체
예수님이 계시는 곳
재일동포 인권을 위해 애썼던 이이누마 지로(飯沼 二郞) 교수의 서거를 애도하며
입춘대길(立春大吉)
본회퍼 - 우리 가슴속에 살아있는 신앙의 선배
박연폭포(朴淵瀑布)
김정애 권사를 생각하며
제주도 피난살이
늙어서 후회되는 일들
예수님과 신앙 선배의 임종
마음의 고향
너의 하느님은 어디 있느냐?
마음의 고향
교회라는 공동체
함께 걸어온 사람들
병과 치유
남은 이야기들
의사의 길을 걸으며
생명을 살리는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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