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의 선용
  • 예수께서 예리고에 이르러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거기에 자캐오라는 돈 많은 세관장이 있었는데 예수가 어떤 분인지 보려고 애썼으나 키가 작아서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예수께서 지나가시는 길을 앞질러 달려가서 길가에 있는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갔다. 예수께서 그 곳을 지나시다가 그를 쳐다보시며 "자캐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하고 말씀하셨다. (눅 19:1-5)

    내가 굉장한 계시를 받았다 해서 잔뜩 교만해질까봐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로 찌르는 것 같은 병을 하나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서 나를 줄곧 괴롭혀 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교만에 빠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고후 12:7)

    요즈음 소아과에는 키가 작다고 해서 찾아오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본인이나 부모가 상당히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삭개오도 키가 무척 작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지나가시는데 도저히 만나 뵐 도리가 없어서 뽕나무에 올라가서 예수님이 지나가실 때 열심히 손을 흔들며 예수님의 주의를 환기시킨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그 열심을 보시고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삭게오는 키가 자아서 자기자신을 비관하고 있었을는지 몰라도 키가 작다는 것이 예수님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나면서부터 눈먼 자에 대하여 이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의 죄 때문입니까? 그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느 누구의 죄 때문에도 아니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없다. 그러나 병자에게는 의사가 필요하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병원이나 의사가 아무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도 병이 없었다면 서울 아산병원을 찾아오게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병’ 자체는 우리에게 고통을 줄 뿐이고 우리에게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질병으로부터 치유를 받는 것만이 우리의 소원입니다. 그러나 그 고통스러운 질병이 그것을 통하여 예수님과 더 가까이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면 그것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 병원에는 여러 가지 질병으로 수많은 환자가 입원하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단기간의 치료로 낳을 수 있는 병도 있고 현대의학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는 질병도 많습니다. 현대인이 알고있는 많은 질병이 완치는 불가능하고 다만 그것을 조절해 가면서 일생동안 지내야 하는 병도 많습니다. 당뇨병, 고혈압 같은 병이 그러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병으로부터 완전히 치유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그러나 그 기도가 우리 인간의 소원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자기에게 부끄러운 병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병이 확실히 무슨 병이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혹은 편두통같은 것이라고 하고 혹은 간질이 아니었나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울은 이 병을 없이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선교하는데도 지장이 있었습니다. 체면에도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병은 제거되지 않았습니다. 교만하지 않게 하기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 가시를 그대로 두셨다고 하였습니다.

    “영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유익을 위하고 우리를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기 위하여 훈련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훈련이 그 당시에는 즐겁지 않고 도리어 쓰라린 것으로 생각되지만 나중에는 그것으로 연단받은 사람들에게 의의 화평한 열배를 맺게 해줍니다.” (하브리 2:10-11)

    어떤 시인은 이렇게 읊펐습니다.

    무엇이나 얻을 수 있는 강한 체력을 달라고 하느님께 간구했으나
    나는 약한 몸으로 태어나
    겸손히 복종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큰 일을 하기 위하여
    건강을 구했더니
    도리어 몸의 병을 얻어
    좋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파스칼은 “병의 선용” 간구하는 기도를 다음과 같이 들렸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당신에게 봉사하도록 건강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속되게 사용했습니다. 당신은 나를 바로 잡기 위해서 이제 나에게 병을 주었습니다. 나는 나의 건강을 악용했습니다. 만일 나의 체력이 지속되는 동안 나의 마음이 이 세상에 대한 애착으로 가득 찬다면 나의 영혼을 위해서 나의 기력을 없이 해 주소서. 육체의 허약에 의하든지 사람의 열성에 의하든지, 나로 하여금 이 세상에 물들지 말고 오직 당신만을 기쁘게 하옵소서. 육체의 병이 영혼의 약이 되게 하소서. 주여! 이 비참한 흙덩이 위에 당신의 영을 쏟게 하려면 나는 어떻해 해야 좋겠습니까? 나는 슬픔을 피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나는 오직 한가지를 알고 있습니다. 당신을 따르는 것은 「선」이요, 당신을 거역하는 것은 「악」이라는 사실이입니다. 나를 당신에게 결합시켜 주시옵소서.”

    그는 39세에 사망했는데, 죽기 3년전에 이 기도를 쓴 것입니다. 39년 2개월이란 그의 일생은 투병의 일생이었습니다. 하루도 아프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팡세」에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지만 그는 그야말로 조금만 건드리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갈대밭은 허약한 사람이었습니다. 파스칼은 심한 두통과 복통으로 고통을 많이 받았는데 의학자들의 생각에는 결핵성 복막염으로 추측되고 있다.

    육체의 병은 우리 영혼의 약이 될 수도 있다. 그것들 통하여 예수님과 더 가까이 만나는 계기가 되고 그것을 통하여 우리가 더욱 겸손하게 되고 그것을 통하여 우리가 더욱 건강의 고마움을 알고 건강할 때에 더욱 열심히 뜻있는 일을 하게 된다면 병은 우리에게 영혼의 약이 될 것입니다.

    1994. 6. 8 (서울 아산병원 수요예배)

머리말
그저 주어진 대로 산다
밀알 하나
들의 백합화를 보라
너의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
십자가의 길
병의 선용
죽음과 삶
향린의 태동과 초창기의 모습
초점을 가진 교회
내가 목마르다
그리스도와 함께 걸으며, 함께 싸우며 그리고 그리스도와 고난을 함께하는 교회
전쟁과의 전쟁
치료와 치유
지구의 암:인간
우리 몸의 지혜
마음의 고향
사랑의 날개
꿈에서나 그려보던 금강산
60년 만에 밟아보는 평양땅
6․25의 회상
미국의 패권주의와 아시아의 평화
시급히 북녘 어린이를 도웁시다
이라크 어린생명들의 비명
“일등만이 살아남는다”는 세계
야만의 시대
안병무(安炳茂) 형을 먼저 보내면서
야성(野聲)과 안병무(安炳茂)
행동하는 양심 -인간 홍근수
서울의대 가정의학과 창립 20주년을 축하하면서
인의협의 반 세대를 회고하며
의대생의 방학동안의 농촌 활동
서울의대 소아과 전공의와의 대화
대한소아과학회의 초창기
낙엽과 더불어
장애(障碍)의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생명의 기쁨
'평양 어깨동무 어린이병원' 준공에 즈음하여
60년에 되돌아보는 향린의 창립정신
교회라는 공동체
예수님이 계시는 곳
재일동포 인권을 위해 애썼던 이이누마 지로(飯沼 二郞) 교수의 서거를 애도하며
입춘대길(立春大吉)
본회퍼 - 우리 가슴속에 살아있는 신앙의 선배
박연폭포(朴淵瀑布)
김정애 권사를 생각하며
제주도 피난살이
늙어서 후회되는 일들
예수님과 신앙 선배의 임종
마음의 고향
너의 하느님은 어디 있느냐?
마음의 고향
교회라는 공동체
함께 걸어온 사람들
병과 치유
남은 이야기들
의사의 길을 걸으며
생명을 살리는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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