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에서나 그려보던 금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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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살아있는 동안 북한 땅을 밟아볼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금강산을 가게 되어 감개무량했다. 중국의 대시인 소동파(蘇東坡)조차 고려에 태어나 금강산을 한번 보는 것이 소원이다(願生高麗國 一見金剛山)이라고 했거늘, 이북에서 태어난 나로선 금강산을 가보는 것이 소원이 아닐 수 없었다.

    관광객 중에는 이북에 고향을 둔 사람도 많았고 이남에 고향을 둔 사람들 중에는 효도관광으로 자녀들이 노부모를 모시고 온 사람들이 많아 참 보기가 좋았다. 80세 가까운 사람들도 많아 내 자신이 늙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우리가 타고 간 금강호는 2만8천톤급이나 되는 큰 배였고, 바다는 잔잔하여 객실에 들어가있으면 호텔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저녁 6시 반쯤 동해항을 출발한 배는 잠자고 있는 동안 항해를 계속해 다음날 아침 7시경에 북한 장전항(長箭港)에 도착해 있었다.

    금강호는 커서 직접 항구에 대지 못하고 작은 배로 갈아타고 육지에 내렸다 배에서 내리니 앞 쪽에 붉은 현수막이 걸려 있었는데 거기에 '동포의 심정으로 환영한다.'

    관광 첫째날

    관광객 입출 관리소에서 입국수속을 마치고 30명이 한 조가 되어 관광버스에 나누어 타고 관광의 시발지인 온정리(溫井里)로 향했다. 온정리까지는 약 7km의 시멘트 길로 양쪽에 철조망이 처져 있고 길가에는 뛰엄뛰엄 군인이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그들은 말라서 그런지 무척 어리게 보였으며, 쓰고 있는 큰 모자가 무겁게 느껴졌다.

    철조망 저쪽에서는 농사를 짓고 있는 여인들이 일손을 멈추고 버스가 지나가는 것을 보면 우리를 향하여 손을 흔들었다

    첫 날은 구룡폭포(九龍瀑布) 코스였다. 온정리를 떠나 신계사터를 지나갔다. 신계사(神溪寺)는 법흥왕 6년(519년)에 세워진 사찰인데 전란에 소실되고 현재 3층 석탑만 남아 있었다. 신계사터를 지나 주차장에서 버스를 내려 걷기 시작했다.

    400~500m간격으로 암지대, 금수다리, 상록수, 만경다리를 지나서 금강산의 대문이라고 하는 금강문(金剛門)을 통과하게 된다. 상록수에서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생수를 마셨다. 이 물을 한 잔 마시면 10년씩 젊어진다고 하는데, 그 물은 정말 타고 맛이 그만이었다.

    금강문을 지나면 금강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으로 꼽히는 옥류동(玉流洞)이 나타난다. 주위에는 가파른 절벽, 기암괴석, 소나무 숲, 맑은 물이 어울려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었다.

    옥류담에서 얼마안가서 연주담이 있고 다음에 비봉폭포(飛鳳瀑布)를 만나게 된다. 비봉폭포는 금강산 4대 폭포 중 하나로서 높이가 139m나 되고, 하류 부분이 마치 봉황이 춤추며 나는 모습이라 하여 그런 이름이 붙어 있다.

    비봉폭포에서 880m쯤 올라가면 설악산의 대승폭포, 개성의 박연폭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폭포의 하나라고 하는 구룡폭포가 나타난다. 높이 777m, 폭이 4m가 되는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다. 불법(佛法)에 의해 쫓겨난 아홉마리 용이 숨어 들었다고 하여 그런 이름이 붙어 있다고 한다.

    폭포 곁 암석 위에 해강 김규진이 새긴 미륵불(彌勒佛)이라는 세 글자가 크게 쓰여져 있었다. 젊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구룡폭포 위에 있는 상팔담(上八潭)까지 올라갔으나,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구룡폭포를 보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첫날 관광은 이것으로 끝내고 다시 금강호로 돌아와 저녁을 먹은 후 관광객들은 노래자랑을 하며 하루의 흥분과 피로를 풀었다.

    관광 둘째날

    둘째날은 만물상(萬物相) 코스였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입국절타를 거친 후 버스로 온정리를 지나 만물상으로 향했다. 온정리에서 육화암(六花岩)까지 가는 길을 한하계(寒霞溪)라고 부른다. 이곳은 연중 대부분이 안개가 끼는 곳이 라고 한다.

    중간에 관음폭포를 만날 수 있다. 육화암에서 다시 버스로 만물상을 가기 위한 휴계시설인 만상정(萬相亭)에 이르면 급경사의 가파른 길이 연이어진다.

    세 신선이 마주 보는 자세로 서 있는 것 같은 삼선암(三仙岩), 둥근 돌 하나를 머리에 이고 있는 귀면암(鬼面岩), 바위 하나가 벼랑 위에 외로이 솟아있는 독선암(獨仙岩), 7층 석탑처럼 생긴 칠층암(七層岩), 장수가 큰 도끼로 바위 중턱을 찍어 큰 홈이 생긴 듯한 절부암(切斧岩) 등 참으로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다.

    절부암은 바위 위에 앉은 선녀를 흠모한 나무꾼이 그 선녀를 만나려고 도기로 찍으면서 올라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 기묘하게 생긴 바위들은 이 세상의 만물들을 갖다 놓은 듯하다. 절부암에서 다시 1km정도 더 오르면 천선대(天仙臺)가 된다고 하는데 중간에 구름다리와 80도 이상되는 가파른 길이 이어져 나이 많은 사람들은 더 오르지 못했다.

    만물상 관광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온정리에서 금강산 관광 호텔을 둘러 보았다. 호텔의 규모는 왜 크지만, 현재는 전혀 사용되지 않고 있었고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온정리에서 장전항으로 가는 길가에는 아마도 학교에서 돌아오는 어린이들 같은데, 철조망 저쪽 멀리서 버스를 향해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왜 우리는 같은 동족끼리 저 배고파하는 어린이들을 껴안고 쓰다듬어 주며 그들 손에 먹을 것을 듬뿍 들려 줄 수 없는 것일까? 손을 흔들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들과 만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금강산을 뒤로 하고

    배에서 금강산으로 오를 때에는 배낭과 운동 모를 한벌씩 주었고 음료수, 과자와 같은 부식까지 다 주어서 아무 것도 아쉬울 것이 없었다. 금강산에서의 안내원도 모두 현대직원이어서 편리하기는 했으나, 금강산에서의 북한 동포들과는 만날 기회가 전혀 없었다.

    이번에 금강산을 보고 깊이 느낀 것은, 그 경관이 아름다운 것은 말로 이루다할 수 없지만 그 아름다움에 못지않게 그 자연이 손상되지 않은 채 깨끗이 보존되어 있다는 점이다. 종이 하나, 담배 꽁초 하나, 깡통 하나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금강산이야말로 우리 민족 전체가 그대로 아끼고 보존해야 할, 조물주가 내려준 보배인 것이다. 장전항을 떠나 배가 해안에서 점점 멀어질 때 나는 다시 고향을 떠나가는 것 같은 심정이었다. 보름달만이 장전항 하늘 위에 무심히 떠 있었다.

    잘 있거라 금강산아! 아름다운 금강산아! 그 대 부디 그 아름다움을 그대론 간직하고 있어다오. 그래서 갈라진 이 민족의 만남의 장소로서 변하지 않는 그리움을 간직해다오.

머리말
그저 주어진 대로 산다
밀알 하나
들의 백합화를 보라
너의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
십자가의 길
병의 선용
죽음과 삶
향린의 태동과 초창기의 모습
초점을 가진 교회
내가 목마르다
그리스도와 함께 걸으며, 함께 싸우며 그리고 그리스도와 고난을 함께하는 교회
전쟁과의 전쟁
치료와 치유
지구의 암:인간
우리 몸의 지혜
마음의 고향
사랑의 날개
꿈에서나 그려보던 금강산
60년 만에 밟아보는 평양땅
6․25의 회상
미국의 패권주의와 아시아의 평화
시급히 북녘 어린이를 도웁시다
이라크 어린생명들의 비명
“일등만이 살아남는다”는 세계
야만의 시대
안병무(安炳茂) 형을 먼저 보내면서
야성(野聲)과 안병무(安炳茂)
행동하는 양심 -인간 홍근수
서울의대 가정의학과 창립 20주년을 축하하면서
인의협의 반 세대를 회고하며
의대생의 방학동안의 농촌 활동
서울의대 소아과 전공의와의 대화
대한소아과학회의 초창기
낙엽과 더불어
장애(障碍)의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생명의 기쁨
'평양 어깨동무 어린이병원' 준공에 즈음하여
60년에 되돌아보는 향린의 창립정신
교회라는 공동체
예수님이 계시는 곳
재일동포 인권을 위해 애썼던 이이누마 지로(飯沼 二郞) 교수의 서거를 애도하며
입춘대길(立春大吉)
본회퍼 - 우리 가슴속에 살아있는 신앙의 선배
박연폭포(朴淵瀑布)
김정애 권사를 생각하며
제주도 피난살이
늙어서 후회되는 일들
예수님과 신앙 선배의 임종
마음의 고향
너의 하느님은 어디 있느냐?
마음의 고향
교회라는 공동체
함께 걸어온 사람들
병과 치유
남은 이야기들
의사의 길을 걸으며
생명을 살리는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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