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의 고향
  • 나는 황해도 황주에서 10리쯤 떨어진 '긴골'이라는 시골에 태어나 보통학교(지금의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 그 곳에서 자랐고 2학년 부터 보통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홍수원이라는 곳에 살았다.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중학교는 평양으로 다녔고 고등학교와 대학교는 일본으로 다니게 되어 방학 때가 되면 흥수원 집에서 지냈다.

    부친께서는 흥수원에서 10리쯤 떨어진 산골에 자그마한 과수원(사과 밭)과 논을 부치며 농사를 지었다. 앞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집뜰 바로 옆에는 샘물이 솟아 나와 과수원과 논 사이를 흐르고 있었다. 그 시냇물이 어찌나 맑던지 목이 마르면 언제나 소같이 엎드려서 그 물을 마시면 되었다. 산골짜기로 들어가는 길에는 달구지가 가끔 지나가고 있었다. 달구지가 짐을 실지 않았을 때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이 달구지 뒤에 타고 재잘거리고 있었다. 과수원을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에는 빨간 야생 딸기가 언제나 열려 있었다. 크기는 지금 우리가 먹는 딸기보다 작지만 맛은 신선하고 향기로웠다. 뚝을 따라 걸어가노라면 메뚜기들이 뛰어 오르면서 반겨주었다. 자전거를 타고 얼마쯤 더 산골짜기로 들어가서 자전거를 세워놓고 산으로 오르면 그 산속에는 머루(야생 포도), 다래들이 먹음직스럽게 달려있어서 한 바구니씩 따올 수 있었다.

    하루의 농사 일이 끝나면 마당에 멍석을 깔고 동네의 아주머니들이 모여 찐 옥수수틀 먹으며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의 피곤을 풀었다. 모닥불을 피어놓고 그것이 다 타도록 이야기하다가 밤이 깊어지면 엄마 무릎을 베고 잠자던 아이들을 엎고 아쉬워하며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모기를 쫒느라고 피워놓은 쑥 냄새는 지금도 코로 맡을 수 있는 것같이 느껴진다. 집요하게 아기들에게 달려드는 모기를 쫒기 위해 계속 부채질을 하는 어머니들의 손길이 눈앞에 선하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또 어디서 볼 수 있을까?

    해방 후에는 나는 고향에 갈 수도 없었고 소식도 끊어졌다. 해방 전 이북에는 나의 조부모님, 부모님, 네 명의 남동생과 여동생이 하나 있었다. 그 후로 조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아버님도 돌아가셨고 어머니도 돌아가셨을 것으로 생각된다. 동생들 중에 남동생과 여동생이 한명씩 6․25때 남쪽으로 내려오고 세 남동생은 그대로 이북에 있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소식은 까마득하다. 아직 살아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내 머리 속에는 어린 아이 때 그들의 모습 밖에는 남아있지 않다. 그런데 지금 나이를 따져보면 그들은 벌써 60~70대에 들어선 노인들이다. 이제는 벌써 그들의 손자 손녀들이 여럿 있겠지. 그들은 지금 어느 곳에서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을까? 신문 보도에 의하면 황해도가 특히 심한 홍수에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저의 부모님은 산골짜기에 있는 작은 과수원과 논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나를 대학까지 보내느라고 허리가 굽어지도록 고된 일을 하셔야 했다. 자식에게 공부시키는 것이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되어 뼈가 부서지도륵 일을 하셨다.

    부친께서는 지금 생각하면 담석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가금 심한 복통으로 고생하셨다. 그 아픔이 얼마나 심했던지 신음소리가 먼 길가에서도 들릴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같으면 진통제만 하나 놓아드려도 즉시 아픔을 멈출 수 있었을 터인데 속수무책으로 뎅굴면서 참아야 했으니 그 고통이야 얼마나 했을 것일까? 아들을 의사로 만들어 놓고도 가로 막힌 38선 때문에 소식조차 모르고 의학적으로 아무 혜택도 받지 못하고 돌아가셨으니 참으로 원망스러운 일이다.

    이미 많은 이산가족들이 서로 만나볼 수 있을 날만 기다리다가 죽어 갔다. 해방 때 초등학생으로 헤어진 얼굴은 이제는 60~65세의 노인이 되어 백발이 무성한 사람이 많을 것이고 그 중에는 이미 타계한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흥수원이라면 서울에서 경의선 기차를 타고 대전거리만큼만 북쪽으로 가면 된다. 그러니까 2시간쯤 차를 타고 가면 될 거리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부모형제와 고향 산천을 두고도 반 세기가 지나도록 가볼 수가 없는 나라, 이러한 나라가 도대체 이 땅위에 어디에 또 있을까? 참으로 참혹한 나라이다. 뭐라고 변명할지 몰라도 실로 못난 민족임에 틀림이 없다.

    지금 21세기 눈 앞에 두고 한 민족끼리 한 쪽은 너무 많이 먹어 걱정이고 한 쪽은 집단적으로 굶어 죽어가는 민족이 이 지구상에 또 어디 있을까?

    아무리 국제기구에서 북한에는 많은 어린이들이 기아에 허덕이며 죽어가고 있다고 보도해도 들은체 만채하고 있다. 고사 작전을 펴서 항복을 받아 내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 특히 어린이들에게 무슨 죄가 있을까? 책임을 져야할 권력층은 아무렇지도 안고 애먼 어린이들만 죽어가고 있지 않는가?

    수많은 우리 동족의 생명을 앗아간 6․25, 그 6․25는 총 소리만 들리지 않을 뿐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지금도 총으로 죽이나 기아로 죽이나 죽이기는 마찬가지다. 기아로 죽이는 것은 총으로 순간적으로 죽게 하는 것보다 더 잔인한 일이다. 물론 일부러 굶어 죽이려는 것은 아니지만 굶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그대로 보고만 있다는 것은 결국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굶어서 말라버린 어머니 젖을 빨다가 지쳐서 죽어가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눈 앞에 그려보자. 지나가는 나그네의 외투를 먼저 벗기는 것을 걸고서 내기를 한 "해"와 "바람"과의 시합에서 찬바람보다 따스한 해가 승리했다는 이솝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이 동족상잔의 냉전을 녹여 버리는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머리말
그저 주어진 대로 산다
밀알 하나
들의 백합화를 보라
너의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
십자가의 길
병의 선용
죽음과 삶
향린의 태동과 초창기의 모습
초점을 가진 교회
내가 목마르다
그리스도와 함께 걸으며, 함께 싸우며 그리고 그리스도와 고난을 함께하는 교회
전쟁과의 전쟁
치료와 치유
지구의 암:인간
우리 몸의 지혜
마음의 고향
사랑의 날개
꿈에서나 그려보던 금강산
60년 만에 밟아보는 평양땅
6․25의 회상
미국의 패권주의와 아시아의 평화
시급히 북녘 어린이를 도웁시다
이라크 어린생명들의 비명
“일등만이 살아남는다”는 세계
야만의 시대
안병무(安炳茂) 형을 먼저 보내면서
야성(野聲)과 안병무(安炳茂)
행동하는 양심 -인간 홍근수
서울의대 가정의학과 창립 20주년을 축하하면서
인의협의 반 세대를 회고하며
의대생의 방학동안의 농촌 활동
서울의대 소아과 전공의와의 대화
대한소아과학회의 초창기
낙엽과 더불어
장애(障碍)의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생명의 기쁨
'평양 어깨동무 어린이병원' 준공에 즈음하여
60년에 되돌아보는 향린의 창립정신
교회라는 공동체
예수님이 계시는 곳
재일동포 인권을 위해 애썼던 이이누마 지로(飯沼 二郞) 교수의 서거를 애도하며
입춘대길(立春大吉)
본회퍼 - 우리 가슴속에 살아있는 신앙의 선배
박연폭포(朴淵瀑布)
김정애 권사를 생각하며
제주도 피난살이
늙어서 후회되는 일들
예수님과 신앙 선배의 임종
마음의 고향
너의 하느님은 어디 있느냐?
마음의 고향
교회라는 공동체
함께 걸어온 사람들
병과 치유
남은 이야기들
의사의 길을 걸으며
생명을 살리는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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